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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거실과 부엌의 형광등이 너무 어두워져서 인터넷으로 onlight.co.kr((주)아름전기)이란 조명 전문 사이트에 등기구를 주문해 받았다. 여기에 주문을 넣은 것은 이곳이 조명만 파는 게 아니라 '설치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선전하고 있었던 까닭이다. 두 개의 등을 교체하는 데 5만원 정도를 내면 된다고 쓰여 있고, 물품을 받은 후에 전화로 설치를 의뢰하라고 해서 평일 오전 9시에 연락을 넣었다. 아침 9시 전화 연결 안됨. 9시 반, 10시, 10시 반, 11시, 11시 반, 전화 연결 안됨. 오후 1시 , 1시 반 전화 연결 안됨. 고객센터 전화번호에 병기된 핸드폰 연락처를 찾아 간신히 전화가 연결됐다. 그런데 반응이 기대와 달랐다. 설치기사 연락처를 줄테니 따로 연락해 보라는 거였다. 아니, 그러면 ..
행복은 와인뿐, 이라고 말하지 않게 되길 바란다. 삶은 종종 쓸쓸하고 그이상 상한 내장을 씹을 때처럼 안에서 진물이 터지는데 괴로움 사이에서 환희를 만나기보다 평안 속에서 때때로 기쁘기를 원한다. 대단한 가치를 이루지 못할 지라도 의미없는 고통에 생을 내주는 일은 없길. 책무로부터 도망치지 않고 생활에서 해방감을 맛보길 꿈꾼다. 오랜 인연들과의 계약을 마쳐야 할 날이 오고 있다. 그건 전혀 다른 삶을 뜻하겠으나 뼈를 바꾸고 형태를 버리지 못하는 이상 어차피 다른 삶은 없으니 이쯤에서 다른 길로 빠져도 좋겠다. 더 불행하게 될까봐 두려워하지 말아라. 그런 데 허비하기엔 하루하루가 너무나 찬란하므로. 포도주를 마시는 일은 행복하다. 하지만 그건, 행복한 날들이기에 그런 것뿐. 인과를 혼동하지 않도록. 남이야..
일기를 쓸 때 가장 중요한 점. 왜 나는 그렇게나 사실에 집착했을까. 그래봐야 그 사실은 '나만의 사실'일 뿐이었는데. 그 속에서라도 좀 더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을. 야마시타 토요코의 만화 참 좋다. 차갑고 명징해서, 진짜 위로란 이런 거지. 껍데기를 깨부숴 주는 것.
광주 충장로의 독립서점 임인자 대표님이 어느 자리에선가 그랬다. "저는 카페에서 휴식하지 않아요." 아마 그 뜻은 뭘 사는 댓가로만 얻을 수 있는 조건부 휴식을 휴식이라 여기지 않는다는 뜻일 것이다. 인테리어가 말끔한 카페에서 비싼 댓가를 치르고 독립적이지 않은 사용권 혹은 임대권을 얻는 게 어떤 이들의 취향이라는 걸 잘 안다. 그러나 사실 이러면 이럴수록, 우리는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쉼을 판매자에게, 더 정확히는 자본에게 맡기게 되겠지. 우리에게 필요한 건 더 많은 카페(상업 공간)가 아니라, 더 많은 녹지, 더 많은 공원이다. 한평공원같은 도심의 짜투리 휴식처가 더 많이 늘어나길 바란다 (김연금 조경작업소 울 대표님, 응원합니다. 뵙고 싶네요!) 그리고 더불어, 도시를 적극적으로 그린벨트화 하기..
착각은 참 좋다.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망상을 해 왔는지 깨닫게 해 주니까. 바라건대, 올해 안에 내가 착각하고 있는 일들이 모조리 밝혀져 내년부터는 한결 홀가분하게 해야 할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되길.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는 타인에게 따로 물어볼 필요가 없다. 지난 몇 년 간 어떻게 살았는지, 누군가를 얼마나 도왔는지, 무엇을 지켜왔으며, 어떤 것을 보려고 노력했는지 따져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나의 지난 날이 곧 지금의 나이고, 또 미래의 나다. 현실과 상관없는 생각을 하는 건 나쁘지 않고, 또 피할 수도 없는 일이다. 거기에 퇴행의 욕망을 덧씌우기보다 다른 꿈들을 묶어볼 수 있지 않을까. 욕망이여, 입을 열어라. 거기서 사랑을 발견하겠다(김수영).
518을 다룬 시 가운데 아주 인상깊었던 작품. 이번 광주 원고에 넣고 싶었으나 연락처를 몰라 게재 허락을 얻지 못했다. 그래도 두고두고 읽고 싶어서 여기 베껴 적는다. ================= 날이 선 기억으로 눈뜨는 5월이면 길 위에서 꿈꾸던 노래들이 타오른다 거울 속 발목 빠진 새 한 마리가 울고 있다 날아가던 총알이 아직 여기 멈춰 섰다 죽지 못한 새들은 죽지에 얼굴을 묻고 불 꺼진 건물들 사이 그림자가 스쳐간다 머뭇대던 물방울이 미끄러져 떨어진다 허공을 허물면서 날아오는 메아리 금남로 길을 접어서 몸속에 말아 넣는다 - 박성민, 시 전문, (『어쩌자고 그대는 먼 곳에 떠 있는가』, 시인동네,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