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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라, 여기가 로도스다

허밍 데이

진광불휘 2024. 11. 6. 17:11

 

오랫동안 준비하고 고대했던 일이 시작되자마자 끝났다. 2년 만에 사실상 절친과 독대하는 자리였는데, 예정보다 일찍 동생이 오고 본인도 귀가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해서, 말 몇 마디 나누지 못하고 5분여만에 그가 돌아가는 모습을 지켜봐야했다. 

이러려면 왜 굳이 만나야 했나. 카톡으로 대화하는 게 더 길게 얘기하는 게 아닌가. 얼굴을 보는 일은 중요하지만, 스쳐가려고 몇 달을 준비하고 고민하는 건 무용한 일. 최소한 동생에게도 양해를 구하고 몇 분이라도 더 이야기했어야 했는데. 눈치가 보여서 그랬냐고 이후에 물어봤지만 애매한 답만 돌아왔다. 설렌다며 계속 기대하고 있던 그였는데. 

황당하기도 했고, 화가 치밀기도 했으나 확실해진 건 있다. 아직은 둘이 만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란 것. 그와 나의 예상보다 더 시간이 필요할 거라는 사실도. 나 역시 과도한 책임감을 내려놓을 때가 됐다. 그를 내 차에 태우고 움직일 수 있는 날도 한참 후에야 가능하리라. 그러니 차도 없애고 2년 전과 같은 생활로 돌아갈까 한다. 어떻게든 그와 함께 하려고 여러 준비를 해왔으나 직접적으로 도울 수 있는 일이 적다는 판단이다. 

그를 보내고 돌아가는 일이 처참해서, 긴 한숨이 나왔다. 그 한숨은 계속해서 내뱉어져 마치 소리없는 휘파람 같기도 했다. 이런 쓸쓸하고 허망한 날을 아이러니를 곁들여 허밍 데이, 라고 부르자. 괴로워서 휘파람을 불게 되는 날이 있지. 그런 날의 마음을 아는 것도 삶을 공부하는 작업이다. 

누구보다 열심히 재활에 몰두하는 친구에게 좋은 일이 여럿 생기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하겠다. 동시에 또한 내 삶을 돌보겠다. 기도는 끝났다. 현실로 귀환할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