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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사랑의 증명" 본문

뛰어라, 여기가 로도스다

만화 "사랑의 증명"

진광불휘 2023. 9. 24. 11:13

 

지인이 좋아했던 일본 만화로 "사랑의 증명(이하 "사증")을 꼽아서 생각이 났다.
호시사토 모치루가 그렸고, <진심의 증거>라는 드라마로도 만들어진 그 작품은 읽고 있자면 가슴이 한없이 답답해지는 레알 고구마 만화다. 여주인공은 고구마 100개가 사람이 된 듯한 인물이고, 남주인공을 제외한 나머지 등장인물도 하나같이 고구마 중독인 듯 우유부단하고 흐리멍텅한 작자들이다. 
결국 무수한 민폐를 끼치고 서로를 망가뜨리며 점점 더 진창 속으로 빠져든다. 냉정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그중 누구에게도 감정이입이 되지 않아 읽는 내내 속에서 천불이 났던 아주 요상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게 좋았다는 사람도 있네. 신기하지.
 
생각해 보면 "사증"의 페르소나 같은 성격이 한때 주변에도 있었다. 한 다리 건넌 사이였는데, 재치가 있고 사람들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측면도 있어 인간성이 괜찮은 사람이라 여겼다. 종종 만났고, 그 이상의 인연을 이어가기도 했는데 가까이 두고 보면서 마침내 알게 됐다. 아, 그동안 내가 좋다고 생각했던 부분은 그가 보여주고 싶었던 정면, 그러니까 분칠한 얼굴에 불과했구나. 그는 게으르고, 무책임하며, 주변에 끊임없이 부담을 씌우고, 끝내는 모든 걸 내팽개치고 나몰라라 도망가버리는 무책임한 난봉꾼이었다. 사적으로 또 공적으로 함께 있는 동안 그는 수백 가지 거짓말을 늘어놓고, 제멋대로만 하려고 들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잘못이 아닌 양 호도하기 위해 타인이 억압해 어쩔 수 없이 그리 된 것처럼 위장하고 뒷통수를 쳤으며 호박씨를 깠다.
 
공적인 인연이 끝나고도 사적인 인연은 남아 종종 후문을 들을 때가 있는데 정말이지 그는 굉장하다. 그 후로 세월이 한참 흘렀는데도 여전히 그러고 있으니. 아이러니한 것은, 그가 변명이랍시고 늘어놨던 고백이 '사랑받고 싶어서'였다는 점이다. 하지만 늘 그는 남이 가진 것을 질시했고, 속물적인 가치에 열광했으며 본인을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을 배반해 왔다. 그러니까, 그는 내내 사랑받고 싶어했다지만, 아무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았고,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짓들만 반복했다. 지금도 나는 그가 사랑이라 부르는 게 무엇이었는지 알지 못한다. 그것은 자극과 허영, 탐닉과 즉물성의 고순도 합성물질일는지. 아니라면 그게 진짜 무엇인지 본인은 정말 정체를 알고 있을까. 고개를 젓게 된다.
 
"사증"은 다행히 만화인 까닭에, 수많은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여주인공은 남주인공과 해피엔딩을 맞는다. 그러나 작가도 독자도 바보가 아니라서, 결말은 난데없는 목가적 생활로 끝난다. 어쩔 수 없었겠지. 그런 불합리를 용서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는 만화라는 설정으로도 설득할 수 없었을테니.
 
인생은 결국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주변과 스스로에게 증명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가끔은 궁금해진다. 그는 여전히 다중인격을 연기하며 제 삶을 고달프게 만들고 있을까. 수많은 이들을 사랑한다 생각하면서 또 번갈아 그들을 속이고 기만해온 그의 삶은 과연 어떤 가치를 입증하는 것일까.   
 
"사증"의 여주인공은 말 그대로 팜므파탈이다. 엄청나게 매혹적인 여성으로 흔히 오도되지만, 실은 단순히 누군가를 수렁에 빠뜨리는 개미지옥일 따름. 한나 아렌트가 지적했듯 악은 평범하다. 대단하지 않다. 그저 선의가 결여되어 있어 특이해 보일뿐. 그 안에 매력적인 본질 같은 건 없다. 똑같이 선의가 결여된 이들과 함께 끝내 구덩이 속으로 빨려들겠지. 간혹 그를 떠올리면 지금도 오한이 든다. 그와 나는 앞으로도 계속 만날 일 없길, 부득이 만나게 되더라도 말을 섞는 만용을 부리지 않길.
 
부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