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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며칠간 본문
눈을 뜨자마자 휴대폰을 확인한다. 알림이 없으면 집안 일을 한다. 청소기를 돌리고,
쌀을 씻어 3시간 불림 후 취사 버튼을 눌러둔다. 옷걸이를 뒤져 빨랫감을 모아 세탁기도 돌린다.
그 후 컴퓨터를 켜서 이번 주에 해야 할 온라인 작업을 살펴본다. 학원에서 건네 준
지침서를 따라 국비 지원 사이트에 들어가 가을부터 시작될 자격증 과정을 신청한다.
때때로 부리나케 전화기가 울린다. 택배가 왔다는 문자, 자료를 넘겨받아 다시 넘겨줘야 하는데
왜 늦어지냐고 독촉하는 전화, 어제 연락을 받지 못해 미안하다는 톡, 정기적인 안부 전화,
아침밥은 점심밥이 되고, 일은 계속해서 쌓인다.
어제는 하루종일 소식을 기다렸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확인 문자를 보내고도
일곱 시간을 넘겨셔야 답을 들었다. 다행히 나쁜 소식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전화기 앞에서
기다려야만 하는 시간은 나쁜 상상으로 촘촘해진다. 그쪽도 힘들 걸 알기에 독촉은 불가능하다.
뭔가 일이 있겠지. 별 일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답을 받고 나서야 간신히 안도하고 나가떨어진다.
요청할 다른 것도 있었지만 차마 묻지 못한다. 주말은 아주 힘겨운 시간이다. 다른 일을 할
엄두를 내지 못해 집안 일이 쌓인다.
세탁이 끝나서 빨래를 넌다. 화장실 조명이 꺼져서 전등을 교체한다. 취사를 마친
밥을 소분해 냉동용기에 나눠둔다. 난데없이 허기가 져서 대충 점심을 때운다.
다시 국비 지원 사이트에 들어가 나머지 추가 작업을 하고, 학원에 전화를 걸어
다음에 해야 할 일을 확인한다. 월요일은 재활용품을 내다 놓는 날이라 한 주간의
상자며 병이며 비닐, 플라스틱을 나눠 박스에 몰아넣는다. 벌써 저녁이 가까워진다.
도서관에서 책을 반납하라는 문자가 온다. 나가서 재활용품을 분리 수거하고
도서관에 들러 책을 반납하는 동선을 머리 속에 그린다. 하루종일 집에 있었으니
걷기라도 해야지. 비가 그친 여름날은 뜨겁다. 그러니 해가 질 즈음에 이 모든 것을
한 큐에 처리하도록 하자. 더우니까 근처 마트라도 돌까나. 책을 반납해야 되니까
나머지 30페이지를 마저 읽고 가자. 내일부터는 또 며칠간 자료를 받아 정리하고
넘겨줘야 하므로 마음이 바쁘고 손이 낯설 것이다. 다음주 중에는 지방 일정이 있으니
어쨌든 이번 주, 내주 초까지 이번 일이 끝나야 한다.
계획이란 걸 전혀 할 수 없는 두 달이었지만, 그 안에서도 나름 계획은 짠다. 다만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을뿐더러 늘 새로운 무언가가 덧붙여질 뿐이다. 앞으로 사정은
좀 나아질까? 아니면 더 어려워질까? 모른다. 아무튼 살아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을
하면서 친구와 관련된 만약의 작업들을 상정해 준비해야 한다. 가을이 되면 하루에 8시간씩
수업을 듣게 되므로 더욱 바빠질 것이다. 그래도 이 여름이 아직 여유로운 시간일 지 모른다.
8월에 짬이 생기면 미뤄만 두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자. 지난 목요일에 후배를 만난 이후로
외출이 없어 머리는 산발이고, 얼굴은 수염으로 덥수룩하다. 집에만 있는 건 좋지 않으니까
도서관이라도 가고, 일없이 좀 걷자. 겨우 이런 계획을 짠다. 고단하지만, 이런 계획이나마
세울 수 있는 삶은 다행한 삶이다. 다행한 삶에게는 다행하지 못한 삶에 대한 의무가 있다.
그 둘이 단지 우연히 갈라지는 까닭이다. 어쩔 수 없다, 로 끝나지 않는다. 그렇게는 못한다.
내가 숨만 쉬고 산다고 해서, 필요하지 않을 지도 모를 짐을 떠안는다고 해서 아픈 사람의
고통의 덜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반대를 견딜 수 없다. 그의 고통이 그만의
것이어서는 안 된다. 그것만은 용납할 수 없다.
하루에 두 번 짬을 내 머리를 조아린다. 종교가 없는 이의 기원은 무망할까. 탄원은 어디로
가는가. 모른다. 쓸모를 헤아리기도 어렵다. 그러나 할 수 있는 일은 해야 한다. 그것이
실용적인 것이든 정서적인 것이든 그 어떤 일이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다하고
염원하고 싶다. 시간이 가고 있다. 모든 것을 바꾸고 쇠락하게 만드는 시간의 힘을 안다.
거기에 맞서는 일이 덧없다는 것도. 그러나 지금은 버티고 견뎌야 할 때. 최소한 누구 하나는
받치고 지탱해야 할 때. 다른 이름이 있을 거라 기대하긴 쉽지 않다. 괜찮다.
내가 가장 잘 아는 사람인 내가 있으니. 이 정도로 포기할 성격이 아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