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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이는 '하얀 거탑' 본문
배우 김명민의 열연으로 화제였던 드라마 <하얀 거탑>은 잘 알려져 있듯 야마사키 토요코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정확히는 <백거탑>이라고 해야겠지. 한국의 드라마를 먼저 보고, 나중에 완역 소설을 읽었는데, 드라마의 인상적인 대사들 대부분이 원작 그대로였다는 데 꽤 놀랐던 기억이 난다. 원작소설은 1960년대 작품인 까닭이다. 고도성장기로 반세기가 흐르고도 작품의 현대성은 여전했다는 뜻. 그래서 일본에서도 영화와 연속극으로 수없이 재연됐다지.
이번에 읽은 건 만화판이었다. 소설이나 드라마만큼 서사가 장대하지는 않았지만 주요 사건들을 속도감있게 편집해서 나쁘지 않게 봤다. 만화는 주인공의 대결과 성공, 파국에 대개의 컷을 할애하여, 드라마가 비추던 페르소나의 깊은 정념을 드러내지는 못했다. 원작과 극이 인간이 가지는 야망과 현실, 쾌락과 허망을 적나라하게 해부해 독자와 시청자에게 들이민 것에 비하면 아쉬운 성취다. 그러나 워낙 만화의 분량이 길지 않았던 탓에 거기까지 요구하기는 무리였다는 점도 이해한다.
장르를 바꿔가며 세 번 째 다시 보는 소감은 촘 참혹했다. 그동안 내 삶이 완전히 변했기 때문이다. 중심 에피소드와 비슷한 사고로 절친이 중증장애를 입고 지금도 집과 병원만을 오가는 신세다. 작중에선 주인공이 결국 법의 심판을 받지만, 현실에서 우리는 법정 입구까지도 가보지 못했다. 물론 그것이 내 뜻도 절친의 뜻도 아니었지만 의료재판의 원고 승소율이 2%도 안 되는 한국에서 장기소송에 시달릴 보호자들의 강력한 손사레에 설득조차 어려웠다.
결국 피해는 당사자와 가족만이 오롯이 감당하고 있으며, 혹독한 재활만이 유일한 선택도식이다. 그런 조건에서 이 만화를 보는 일은 아주 괴로운 체험이었다. 답답한 현실이 컷의 바깥을 강고하게 짓누르는 느낌이랄까.
원작 소설도, 드라마도, 만화도 주인공 자이젠 고로(한국 배우 김명민)를 능력이 있으나 권력을 탐하는 자로, 사토미 슈지(한국 배우 고 이선균)를 정의롭지만 답답한 원칙주의자로 대비시키지만, 극단성이 지나쳐서 그 어느 쪽에도 온전히 이입하기는 어렵다. 이를 캐치한 안판석 PD가 김명민에게 망설임과 후회, 홀어머니에 대한 미안함 같은 인간적인 감정을 촉촉히 더해 방영 당시 시청자들의 열광을 받았다. 천재 외과의가 수술로 이겨낼 수 없는 암으로 사망한다는 결말은 성공만을 부르짖던 캐릭터에 대한 심판 같은 측면이 있었는데, 한국의 드라마에서는 반대로 열렬한 연민을 얻었다. 흙수저가 실력만으로 정점에 오르려다가 파멸하는 줄거리가 일반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렸달까.
한국 드라마에서는 김명민과 이선균 말고도 출연배우 대부분이 열연했다. 송선미, 고 김보경, 고 변희봉, 이정길, 김창완, 정환용, 이희도... 정말 배우가 아니라 그 사람들이 그대로 튀어나와 카메라 앞에 있는 듯 했다. 나 역시 '미친' 연기를 보여주는 김명민의 파국에 깊이 공감했다.
하지만 2026년 지금은, 그 변하지 않는 백거탑의 잔혹한 이면에 그저 혀를 찰 뿐이다. 오직 돈만 바라는 의사집단의 추악한 몰골을 경멸하고 손가락질할 뿐. 현실의 공감은 언제나 거기에 희생되는 환자와 시민들에게 바쳐져야 옳다.
신화 속에서 바벨탑이 무너진 건 탐욕 때문이었다. 나는 그것이 단순히 설화라고 생각지 않는다. 파멸은 이미 싹을 틔웠다. 신을 믿지 않지만 기독교전서의 한 문장을 옮긴다.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