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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라, 여기가 로도스다

술비

진광불휘 2024. 3. 11. 00:01

 

계절이 술비*에 막혀 서울로 가지 못한다
힘없이 주저앉은 군산항 허리께에서
늦잠에 빠진 삼동을 깨워 해장국이나 들이키려 모텔을 나섰는데
선지를 새로 삶는지 반찬접시가 나오고도
기별이 없는 국대접을 기다리다 희멀건한 창밖을 내다본다.
더운 해풍에 떠밀린 꽃소식은 1번국도를 따라 오르다
차령에 가로막혀 감감해지고
아점 먹은 뒤에는 서해안을 따라가든 경상으로 비켜가든
어디든 가긴 가야하는데
불현듯 발광하는 전화 숟가락을 팽개치고 황급히 확인해 보니
모호한 이름들의 덧없는 소식에 혀가 차인다
정확한 내용도 금액도 없는 청탁과
한 줌도 궁금치 않은 누군가 다니는 회사 얘기
엊저녁에 어디 가서 뭐 먹었는데 맛있었단 후일담
빈 속에 찬 물 한 잔보다 못한 저만의 독백 
어쩌라고
언젠가부터 혼자 곱씹을 이야기를
굳이 보내고 반응을 구걸하는 게 우정이 됐다.
어쩐지 북상하는 게 갈수록 귀찮아지는데
식당을 나와 갈 데 없는 두 손 바지춤에 찔러넣고
하릴없이 시장이나 기웃거릴 때 심술궂게 우산을 뒤채는 건들바람
오한이 도는지 옹심이 솟는지 설설 신열이 올라
돌이켜 숙소로 갈까
아니면 짐 싸서 다시 내려갈까
여직 가뭇한 국도변 산촌에나 숨어들까
상념들 허공을 메워 괜히 갑갑해질 때
주머니 속에서 자지러지듯 또 부르르 떠는 전화
뒤늦게 물찬 듯 축 늘어지는 몸뚱이
처지는 걸음 거얼음
귀갓길 점점 더 자욱해지는데

 

 

 

* 술비 : 겨울비를 가리키는 우리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