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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라, 여기가 로도스다

시간

진광불휘 2023. 11. 17. 00:01

 

아주 드물게 옛 인연을 다시 만날 때가 있다. 좋은 사이였으나 부득이한 이유로 오래 만나지 못했다가 재회하면, 마음은 그 자리 그대로 있어 다시 하하호호 웃으며 어제 본 사람처럼 편안하게 마주 앉게 된다. 그러나 시간은 몸뿐만 아니라 정신과 자세에도 새겨지는 법이라 이윽고 건너뛰었던 그 사람의 세월을 시나브로 깨닫는다. 걔중에는 아주 훌륭히 삶을 개척해 온 사람도 있고, 여전히 비슷한 이도 있으며, 예전보다 한심해진 인생도 있다.
 
가장 슬픈 건 이거다. 그동안 경제적으로는 남부럽지 않게 되었는데, 이야기를 나눠보면 사람과 세상에 대한 인식이 저열하다는 거. 이제는 나이나 경험 탓을 할 수도 없고 환경 때문이라고 떠넘길 수도 없는데.
 
살아가다 보면 아주 대놓고 이기적인 인간을 만나지만, 자신은 이기적인 것과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면서 오직 나, 나, 나만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그의 세상에는 타인뿐이고 내가 제일 소중해서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조차 결코 자신을 놓지 못한다. 그러니 당신은 외롭겠지. 내 말을 주구장창 들어줄 사람이 없으니. 하지만 대화는 말을 통해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일. 듣지 않고 일방적으로 쏟아만 내는 사람을 좋아할 상대는 없다. 그런 사람의 말이 재미날 리도 없다. 세계는 한뼘 제 머리 속에만 있어 편협하고 앙상하니.
 
처음의 반가움과는 다르게, 그런 사람과 관계가 오래 지속될 수 없다. 고민해 보지만 결국 안 만나게 된다.
 
그들과 우연히라도 다시 보게 될 지는 모르겠다. 삶은 알 수 없으니. 그러나 다음에 본다면, 그가 시간을 제대로 살아왔기를 빈다. 내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 그래야 그도 덜 외로워질 테다. 인생은 길다. 어떤 사람에게는 더더욱. 행복한 시간은 빨리 흐른다. 당신이 행복하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