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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라, 여기가 로도스다

2022 내 올해의 책, "마이 스트레인지 보이"(이명희)

진광불휘 2022. 12. 28. 21:18


올해의 책을 고르려다 보니 2022년에 내가 읽은 권 수가 얼마 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 역대 가장 적은 독서량이다. 하지만 아쉽기보다는, 그거라도 읽을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2022년은 내게 지독하고, 끔찍하며, 공포스러운 한 해였다. 지금 큰 탈 없이 살아 있다는 게 용할 정도로.

 
기록을 뒤져 최종 후보로 꼽은 책은 아래의 세 권이다.
 
1. 허지웅, <살고 싶다는 농담>, 웅진지식하우스, 2020
2. 미셸 자우너, <H마트에서 울다>, 문학동네, 2022
3. 이명희, <마이 스트레인지 보아>, 에트로, 2022
 
2번이 (자전적)소설이고, 1,3번이 에세이다. 그러나 사실 이 셋을 다 에세이로 퉁쳐도 틀리지 않을 것 같다. 1번은 허지웅만이 쓸 수 있는, 인생을 두 번 산 것 같은 통찰이 묻어나와 여러 번 다시 읽었고, 2번은 한국인의 정체성이란 어떤 것인가를 재미동포의 육성으로 들려주며 사랑과 고통을 성숙하게 이겨내려는 고유한 자세가 감동적이었다. 3번은 아주 짧은 분량 속에서도 최대한 정직하게 감정을 드러내고 삶을 받아들이려는 저자의 고백이 마치 내리꽂히듯 마음 속으로 전달됐다. 더없이 훌륭한 기록이라고 평가한다.
 
3권을 뽑고 나니 이 책들이 전부, 병마와 싸우며 얻은 각성이라는 공통점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이 책들을 고른 건 우연이 아니겠다. 알게 모르게 어떤 준비를 하며 마음을 다지며 불행을 견디며 어디선가 내려올 두레박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책을 찾았을테니. 그중에서도 이명희씨의 책을 최고로 꼽은 건 벗어날 수 없는 불행 속에서도 삶이 계속된다는 것과 그 삶은 소소한 기쁨을 연료로 운행되는 까닭에, 작고 헐한 보람과 재미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낱낱이 일러주고 있어서다. 난관을 견디기 위해서는 미움(조차)도 필요하다는 사실을 저자가 고백한 것은 충격이었다. 그렇구나. 마치 전혀 모르던 세계가 한 순간에 땅 속에서 솟아올라 기존의 세상과 겹쳐지는 느낌이었다. 어쩌면 끝내 보지 않으려던 장면.
 
내년에는 이보다는 더 많은 책을 읽게 되겠지. 그러자고 마음먹자. 결심하면 결국은 하게 되니 말이다. 나 역시 내년부터는 '마이 스트레인지 보이'를 더 많이 만나게 되리라. 그 밉살스럽고 또 사랑스러운 '보이'들에게 내가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가거라 2022년,
오거라 2023년.
 
극심한 변화 속에서 나는 반 뼘 쯤 깊어졌겠다. 그런 일들이 더 많이 있기를. 그러기 위해 내가 더 많은 것을 내어주기를. 덜 울고, 더 웃을 수 있길. 그리고 언제나 같은 바램을 한 번 더.
 
절친의 회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