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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라, 여기가 로도스다

주말

진광불휘 2022. 11. 28. 11:57

금요일 약속이 예상과 달리 자정을 넘겨서 토요일 아침은 좀 피곤했습니다. 날이 갑자기 추워진 탓인지도 모르겠네요. 평소처럼 일어나 해동한 재첩국을 데워 밥, 김장김치, 구운 계란과 함께 들었습니다. 
재활용품을 분리해 쓰레기장에 가져다 놓고 늘 하던 대로 절, 산, 교회를 순례하며 절친이 회복되기를 기도했어요.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시며 동네를 한 바퀴 걸었습니다. 도서관에 들러 책을 반납하고 생협을 찾아 채소와 두부도 샀습니다. 다음 주의 삶을 준비해야 하니까요. 
집으로 돌아와 읽다가 팽개쳐 둔 책을 몇 장 더 읽었으며, 컴퓨터를 켜 놓친 신간이 있는지 마우스를 한참동안 돌려봤습니다. 점심은 김치볶음밥과 우유 한 잔으로 갈음했지요. 월말이 가까워져서 도시가스 사용량을 체크하고는 현관문 앞에 수치를 적어두기도 했습니다. 냉동실을 뒤져 다음 주말에 먹을만한 게 뭐가 있는지 확인했으며 쌓아놓은 그릇과 컵 수저를 애벌로 씻어 식기세척기도 돌렸습니다. 이제 밤은 정말 금방 오는 것 같아요. 오후 6시도 되기 전에 깜깜해지니까.

저녁에는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술도 몇 잔 마셨습니다. 물론 집에서요. 저번에 구입한 아르헨티나 레드와인이 생각보다 밋밋해서 실망했습니다. 값도 싼 놈이었는데 제가 욕심이 많은가 봐요. 눈만 높으니, 아니 혀만 고급이니 말이예요. 남기지 말아야지 싶어 꾸역꾸역 마시고 나니 곧 취기가 돌더군요. 저녁 9시부터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토요일 하루가 열두 시간 가량으로 아주 짧았던 셈이지요. 

덕분에 일요일엔 일찍 일어나서 길게 휴일을 누렸습니다. 서리태 콩을 불려서 볶고, 현미도 발아시켜 다음주치 밥을 했으며, 서재도 정리, 청소하고, 빨래도 갰습니다. 낮에는 좀 졸았나 봐요. 점심, 저녁도 있는 걸로 대충 먹고, 밤에는 만화책을 읽었습니다. 휴일이라고 특별한 건 없어요. 그래도 일정을 만들지 않으니 마음이 편한 것뿐. 늘 만나고, 또 회의했던 상대가 없으니 주말이면 텅 빈 듯한 느낌이 사라지지 않네요. 이런 결락감은 도무지 익숙해지질 않아요. 일상이 계속되지만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것 같은 불안감, 흐물흐물한 공포가 그림자처럼 붙어다녀요. 물론 그게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알면서도 어찌할 수 없을 뿐.

다음주에도 여러 일이 있고, 또 사람을 만날 거고, 주말이면 술 몇 잔을 마시겠지요. 그럴 겁니다. 친구를 집으로 불러 대접을 할까도 해요. 그러나 저는 알고 있습니다. 빈 자리를 메꿀 수는 없음을. 이 허전함은 오직 한 사람의 부재의 체적이고, 그가 돌아오지 않는 한 나는 여전히 울며 떠돌 것이라는 것도. 이번 주에도 어떤 걸 더 할 수 있을 지 고민할 겁니다. 그리고 또 무력감을 느끼겠지요. 그러나 이 반복의 끝에, 그를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염없이 하루하루를 흘려보냅니다. 어리석은 짓일까요. 그럴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이것이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일 겁니다. 저는 그걸 처음으로 배우고 있습니다.

모두들 건강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