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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절교 본문
예전엔 어땠나 모르겠다. 그때는 휴대폰이 없었으니 집 전화번호나 호출기 번호를 지웠을까.
차단 기능 같은 게 없었던 시대였다. 그래서 단축다이얼에 저장해 두고 깜빡 잊어버려
이건 누구지 하고 눌렀다가 상대와 연결되어 화들짝 놀란 적도 있다. 물론 사과는 했다.
미안하다고, 고의가 아니라고. 그런 해프닝은 관계가 확실히 끝났음을 반증하는 일이기도 했다.
이제는 절교한 이들의 전화번호를 차단하지는 않는다. 차단하는 사람은 아직 끊어내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저 번호를 지운다. 이쪽에서 전화할 가능성을 막아두는 것이다. 연락처가 없으면
톡이나 텔레그램에도 뜨지 않는다. 흔적이 사라지는 셈이다. 그럴 일이야 없겠지만
상대가 전화하더라도 모르는 번호로 뜬다. 모르는 번호, 즉 타인의 전화는 깍듯하되
철저히 타인으로만 대한다. 그쪽에서 친한 척을 하더라도 신경쓰지 않는다. 타인이야 뭐라든
상관없으니까.
타인이 아니면 연락한다. 타인으로 둘 수 없는 사람에게는 어떻게든 마음을 전한다.
이해받지 못할 때도 있고 그 이상 괴로워지기도 한다. 그래도 턱에 부딪힐 때마다
관계를 없던 일로 할 수는 없다. 관계란 타인에서 지인으로, 또 친구로 바뀌는 과정이고
그 과정이 매번 순조롭다면 그건 본질이 얄팍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람은 누구나 제멋대로고 이기적이라 그래서 상처받은만큼만 상대를 이해할 수 있다.
고통스러운 다툼은 피하고 싶지만, 고통 없이, 다툼 없이 관계는 깊어지지 않는다.
피상적인 대화만 나눈 사이는 결국 피상적인 삶 이상을 공유하지 못한다.
전화번호를 지운 이들에게 더이상 남길 말 같은 건 없다. 내 삶의 어떤 페이지도 그들에게
할애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그쪽에도 내가 말끔히 지워진다면 좋겠다.
관계의 역행, 이렇게 타인이 되는 거다. 어떤 소식도 내게 전할 필요가 없다.
나 역시 그럴 것이다.
소중한 친구들, 종종 연락드리지요, 안부를 전하는 일은 꼭 궁금해서가 아니라
하나의 인사이기도 하니까. 쉽지 않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친구로 남아줘서
고마워요. 타인으로 가득한, 점점 더 모르는 사이로만 남으라고 떠미는 이 세계에서
그 모든 번거로움을 무릅쓰고 꾸준히 만나고 있으니 말이예요.
혹은 각자의 사정으로 잠시 그렇지 못하더라도, 기필코 다시 만나도록 해요.
거듭 감사를 전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