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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기록1 본문
판에 박힌 생활을 하며 혼자 끙끙거리고 있자니 재미있는 일이 많지 않다.
그리하여, 한심한 짓일 수도 있으나 소소하게라도 즐거웠던 경험을 기록해두기로 마음먹었다.
어떤 이들은 고마운 일을 적기도 한다든데 성격상 낯간지러워서 그러지는 못하겠고.
1.
K시장 단골 가게의 사장님 내외가 늘 활짝 웃으며 인사해 주신다.
하도 자주 들르니 완전히 낯이 익었기도 하고. 워낙 친절한 분들이지만
그이상 매번 살갑게 말을 걸어주시고 응대해주셔서 저절로 마음이 편해진다.
2.
지난 목요일에는 T가 주말 와인 축제의 초대권을 얻었다며 가겠냐고 연락을 해와서
금요일 저녁에 만나기로 했다. 엄한 장소에서 펼쳐지는 행사였고, 그래서 버스와
전철, 다시 버스를 갈아타며 행사장으로 이동할 요량이었는데 맵이 가르쳐준
경로가 엉망이라 중간에서 내려버렸다. T도 그곳으로 오다가 입장 시간이
끝났을 수도 있다며 톡을 보내와서, 방문을 취소하고 중간 장소인 이태원에서 만나
피자와 수제 맥주를 마셨다. 알아 보니 행사는 한심한 수준이라 가지 않는 게 옳았고
평이 좋은 피자집이 주말 저녁인데 시끄럽지도 않고 맥주 맛도 괜찮아서 편하게 놀았다.
산보를 좋아하는 T를 따라 녹사평에서 이태원, 한강진까지 내쳐 걸었다.
가끔 가랑비가 쏟아졌지만 그 덕에 덥지 않아서 걷는 일이 힘들지 않았다.
처음에는 오지랖이 넓다고 생각했으나 이제는 꾸준히 나를 챙겨주는 T가
고맙기 그지없다. 코로나19를 앓고 난 후 살이 많이 빠진 그가 안스러웠다.
요즘 마음 편히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정말 몇 되지 않는다. 의도치 않았겠지만
그들이 하는 행동이 나를 어루만지고 다독인다고 생각한다.
3.
서울이 아닌 어딘가로 떠나 잠들고 싶으나 일정이 빡빡해 그러지 못한다.
어쩔 수 없이 주말 스케줄을 그려 보아도 교통편이나 숙박이 쉽지 않아
포기하고 만다. 가까운 곳으로 바람쐬러 움직여 보기도 했으나 해방감이 없다.
그래서 가끔 J 생각을 한다. J와 국내를 돌아다니는 것은 늘 낯선 경험이니.
강박에 가까울만치 맛집을 검색하고 정리하는 그를 따라다니다 보면
생각도 못한 엉뚱한 장소에 가 있기 일쑤다. 음식맛에 집착하는 것만큼
부질없는 짓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초면인 노포의 사장님과 천연덕스레
환담을 나누는 J를 보고 있자면 저절로 웃음이 난다. 그러고보니 전화 한 번 해봐야 겠다.
올해 한 번 더 만날 수 있다면 좋겠다.
4.
또 다른 K는 오래된 지인인데, 서로의 취향이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부단히 만났다. 그에게 경탄할만한 면이 많았던 까닭이다(그쪽에서 나를 만난 이유는
모르겠다). 바빠서 만날 수 없을 때면 꼭 메시지를 남겼고, 각자 책을 낼 때마다
잊지 않고 챙겼다. 조금 어렵지만 마음이 통하는 사이. 그와 나의 거리는 그 즈음이었을 거다.
어느 일요일 오전, 휴대폰을 확인해 보니 부재중 전화가 찍혀 있었다. K였다. 주말이나
저녁에 전화할 정도로 가까운 관계는 아니어서 의아해하며 전화를 걸었는데 여러 번
거듭해 걸었어도 받지 않았다. 바쁜 일이 있겠거니 싶었다. 한참 뒤에 그가 전화를 걸어와
통화하게 됐는데 미용실에 있느라 전화를 받지 못했단 거였다. 그렇군요. 그런데
무슨 일 있어요? 그는 이야기가 길어질 텐데 괜찮겠어요, 양해를 구했고
공개적인 자리에서 누군가에게 모욕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너무 마음이 상해서
기분 전환차 머리 자르러 왔다고. 내가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그러셨군요. 저같으면
이렇게 하겠어요 깜짝 놀랐지만 최선을 다해 내가 도출한 해답을 전했다. 그러자
K가 말했다. 그런 생각을 한 번도 안 했는데, 남자셨군요. 무슨 뜻인지 몰라 반문했다.
네? 해결책을 말씀해 주시는 걸 보니 남자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랬다. K는
위로를 받고 싶어 전화했던 것인데, 나는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까만 궁리한
셈이었다. K가 자신의 내밀한 감정을 드러낸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그 뒤로도 서로가 바쁘고 특히 내가 지방에 있을 때가 많아 자주 만나지 못했다.
작년에 그가 큰 일을 당하고 내가 안부차 문자하다 내막을 알게 돼서
한결 홀가분해진 지금에서야 K를 만나게 된다.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 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저번처럼 해결책에 몰두하진 않으리라. 쉽지 않은 와중에서도 나와 약속을 잡고
보러 오겠다 해주는 그가 고맙다. 그가 오래도록 건강하길 빌며, 우리가 앞으로도 계속해서
우정을 쌓아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