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고도 본문

뛰어라, 여기가 로도스다

고도

진광불휘 2022. 6. 5. 12:13

 

사무엘 베케트의 유명한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는 오지 않는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내용이다.
이 괴상한 부조리극에 평단이 열광했던 이유는 우리가 바라는 소망은 언제나 이루기 어렵고,
기다리는 사람은 잘 오지 않으며, 죽고 싶다고 늘상 뇌까리지만 생의 쾌락에 깊이 빠져 있는 모순이
삶의 본 모습인 까닭이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는 언제나 이루어지기 어려운 것을 소망하며,
오지 않을 사람을 기다리고, 죽음없이 생이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란다. 저자가 양치기 소년을
예언자로 삼지 않았더라도 고도가 오지 않으리란 건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고도는 현실에 없는 것,
현실적이지 않은 것을 은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고도를기다리지 않을 도리가 없다.
현실이란 세계의 기본 조건이면서 또한 어쩔 수 없는 한계이고, 떼어낼 수 없는 환경이니까.
그래서 주인공들은 고도가 오지 않으면 목을 매려고 한다. 우리는 기다리다 죽는 것이다.
오지 않는 것들을, 아니, 오지 않을 것들을 기다리다가, 기다리기만 하다가. 그러니 아마도
작가가 주장했던 건 주인공들처럼 기다리자는 게 아닐 것이다. 세계를 선취하는 일,
아직 도래하지 않은 세상을 부족하게나마 생활에 구현하고 신념으로 관철해
앞서 살아가는 일이 필요하다고 말했던 게 아닐까. 알 지도 못하고 알 수도 없는 호칭의 존재
(고도)를 기다리는 일은 부조리하니 그저 바라지만 말고 무언가를 실제로 해나가야 한다고
말하는 게 아닐까.
 
그러나 우리들은 또한 기다릴 것이다. 이루기 어려운 소망을, 오지 않는 누군가를. 지루한
삶에 어느날 갑자기 닥칠 종말을. 그것이 인간이란 존재의 어쩔 수 없는 속성이니까.
바꿔 말해 우리가 지금의 모습에서 진보하려면 그 반대로 하면 되는 거겠다.
덧없는 소망을 지우고, 함부로 누군가에 기대지 않으며, 헛되이 죽고 싶다고
말하지 않는 것. 고도가 불필요한 세상을 만드는 일. 각성과 민주주의, 성숙함이
더나은 세계의 모토인 거겠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전히 베케트의 세계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