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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일본 만화 이세계물이 뜻하는 것 본문
* 출장 겸 여러가지 이유로 당분간 업데이트 없습니다.
심란한 와중에 만화방에 들러 일본 만화계에서 대유행중인 이세계물을 훑어봤다.
현세에서 평범하거나 평범 미만인 주인공은 불의의 사고를 당해 저승으로 가게 되고
거기서 본인의 죽음이 오류의 결과라는 걸 알게 되어 그 보상으로 중세와 거의 비슷한
여건으로 요정과 수인과 마법이 활개치는 이세계에서 새로운 삶을 부여받게 된다.
주인공이 아이로 태어나든 전생과 같은 나이로 등장하든 그는 신의 가호 속에서
이전의 정보와 경력을 그대로 물려받는 동시에 이세계의 마법까지 부여받게 되는데
그로서 평범 이하였던 주인공은 곧 영웅으로 등극하고 할렘을 거느린다.
이세계의 문제를 처리하는 데는 전생의 기억이나 단편적인 정보 혹은
아주 저급한 전생의 물품이면 충분하기에 이세계에서 그는 혁명가이면서 구세주,
영웅이면서 인권운동가가 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세계물의 줄거리는 이와 대동소이하다. 구조를 살펴보면
결국 이세계물은 권력도 돈도 가질 수 없는 대다수 남성 노동자의 욕망을 해소해주는
퇴행물인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현세에서는 그저 단순한 생활 상식 정도인 것들이
중세를 표방하는 이셰계에서는 대단한 능력으로 칭송되고, 그에 따라 주인공은
다른 세계로 옮겨와서조차 노력해서 무언가를 이룰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세계물은 고단한 남성 노동자의 환타지를 충족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아무 것도 안 해도 돼. 노력하거나 바꿀 필요 없어. 넌 시대를 잘못 타고 났을뿐
이미 최고야 라는 환상을 계속해서 주입한다. 알다시피 자본주의란 노동자에게
끊임없이 자기개발을 요구하고, 경쟁으로 존재할 수 밖에 없는 성패를 개개인의 잘못과
운명으로 각인하며, 그것을 바꾸기 위해 계속해서 시간과 돈과 노력을 추가해
스펙을 쌓으라 압박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이세계물은 자본주의의
반대편에 위치하는 듯 하지만 실은 그저 절망한 남성 노동자에게 그저 잊고 즐기면 된다며
빠듯한 여가와 자원을 정서적으로 재착취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그러니까, 일본 만화의 이세계물은 정치경제적으로 더 나은 사회로 진보하는 길을
만화적으로조차 포기했다는 뜻이며, 수없는 이세계 복제품들이 나오고 있다는 점에서는
독자를 깔보면서 오직 돈벌이로만 상정한단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간혹 이세계물에도 성장담은 있고, 여타 장르와 결합하면서 기본 구조를
바꾸려는 노력들도 보이지만, 그렇다고 한계를 극복하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현세를 바꾸려는 노력은 현세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니까.
현세의 지독한 억압을 자유가 보장되는 픽션에서 깨부수려는 분투는 필요한 것이나
그것이 의미를 가지려면 그 픽션이 최소한 현세를 시뮬라시옹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외국의 사례를 가져와 무조건 대입하려는 행정가들의 시도가 실패하는 건
그 때문이다. 질문과 답은 언제나 그곳에, 현장에 있다. 즉, 이세계물이 퇴행적 판타지
그 이상이 되려면 적어도 그 이세계가 일본 비스무리하거나 포스트 일본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만화라는 장르 안에서 판타지와 이세계물의 뿌리는 같다. 다른 세계를 상정하고 그 안에서
캐릭터가 행동하며 고유의 세계관과 법칙을 존중한다는 점에서, 또 중세를 근간으로 하며
마법, 초능력과 같은 환상기술에 의존해 이야기를 끌어간다는 점에서도.
정확하게는 이세계물이 중세 판타지물의 이종 교배로 탄생했다는 게 옳겠다.
판타지 역시 현실을 비평할뿐 아니라 감정적 탈출구로서 기능하며 때로는 그 미만,
조잡한 치환에 그치기도 한다. 하지만 '강철의 연금술사'가 보여주듯이 판타지의 명작,
혹은 고전들이 그리고 있는 픽션은 현실과 전혀 다르지 않은 복잡다단한 세상이다.
그 속에서 주인공은 구원을 바라며 투쟁을 거듭하지만 결국 애초에 소망했던 구원을 얻는
단순한 드라마로 끝나지 않는다. 개별적 질문으로 시작되지만 개별적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니라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내놓는 게 예술의 역할이기도 하다. 그런 눈으로 보자면
이세계물은 그 작가들이 만화라는 장르에서 예술은 필요없다고, 나는 답을 내기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일종의 작가적 포기 선언처럼 보인다. 그러나 장르의 생명을 유지하고 또 연장시키는 것은
계속해서 질문하고 또 질문하며 꼭 옳은 답이 아니더라도 새로운 답을 찾아가려는 시도일 것이다.
즉, 작가가 독자들을 믿고 함께 성장하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 이 당연한 사실을 무시하는 한
이세계물은 작가적 무능일뿐 아니라 그 이상 만화라는 세계에 대한 유치한 자해처럼 보이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세계물은 현상 유지, 미투상품 같은 불경기 전략으로서도 옳지 않다.
수준을 낮춰 얻을 수 있는 건 언제나 수준을 높여 얻을 수 있는 것보다 적다.
일본 만화계는 그 점을 알고 있으면서도 좋게 말하면 방치, 솔직하게 말하자면
책임을 유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어떤 나라의 문단처럼.
20220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