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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삼월 본문
장을 보러 조금 먼 마트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돌아갈 버스가 오지 않아 마냥 서서 기다리는데
일요일 아침 OO동에는 행인들이 많았다.
게으름 피운다고 엄마가 킥보드를 빼앗아 앞서가 버리자
갑자기 다리가 아프다고 주저앉는 꼬마,
회색 모자와 밤색 웃도리, 회색 바지를 두른 채
전봇대마다 빌라 급매 전단지를 붙이는 젊은 여자,
정류장 가로수에 몸을 붙이더니 갑자기
엉덩이로 퉁퉁 치며 운동을 시작하는 늙은이,
친구 부부와 쇼핑을 하러 왔는지 시장 입구에서
뭘 샀냐고 귓청 사납게 소리를 질러대는 중년의 커플,
동네 한구석엔 모르는 이들이 명멸했다.
나이먹는다는 건 어쩔 수 없는 일, 여기저기가 아프고
마음먹은 대로만 되지 않는다는 건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은데
부끄러움을 모르게 된다거나 타인에게 불편을 끼치고서도
고개를 빳빳이 들 수 있는 존재로 변하는 일은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이제 시간이 지난다고 현명해지는 존재가 우리는 아니라는 점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떤 부분은 아주 살짝 나아지지만 대개는
그저 퇴보할 뿐임을. 그래서 노력해도 소용없단 말이 아니라
그러므로 더욱 살펴보고 힘써야 한다는 것도.
다시 말해, 나는 잠깐 외출하면서
이웃을 혐오할 근거를 다진 셈이었는데
그런 내 모습이
더이상 아무 것도 이해하려 들지 않고 그저 삐뚤어진 확신만 승인하는
못내 꺼리던 중늙은이들의 일면을 닮은 것 같아
버스에 올라 혼자 킥킥 웃었다.
카트에는 누군가의 든든한 제자같은 열두 병의 포도주가 담겨 있고
집은 이제 지척이다. 내일 모레 술 마실 생각에 속으로 휘파람이 나는데
그렇게
시간은 잘 가는데,
계절은 흘러서 속절없이 해도 바뀌어 버리고
목포 어딘가엔 배 한 척 간신히 서서 녹으로 덮여가고 있는데,
나는 왜 이러고만 있는데,
지금 전국에 하나같이 텅 빈 교실들,
그 아이들이 울고 웃었던 자리같은데,
이렇게 또 사월이 오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