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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길티 플레져2 본문
지인이 선물한 와인이 끝내줬다. 비비노 평점이 높아서 과장이겠거니 하며 가볍게 마셨는데
잔에서 풀리면 풀릴수록 점점 더 훌륭해졌다. 근처 마트에서 비싸지 않게 산 와인이래서
그 마트의 가장 큰 매장을 찾았는데 없었다. 집착은 가질 수 없다고 믿었을 때, 혹은
한번 가졌으나 영영 잃어버렸다 생각할 때 무장무장 부푼다. 혹시나 하여 작은 지점에 들렀다.
아니나 다를까, 매대에도 진열장에도 없어 포기하려던 찰나, 구석 맨 아래 칸에
다섯 병이 남아있는 걸 발견했다. 애초엔 세 병만 집었으나 곧 마음을 고쳐먹고 남은 병을
카트에 쓸어담았다. 뭐, 비싼 건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집에 돌아오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처음엔 재고를 몽땅 쓸어와서 기쁘단 감정. 그리고 한참 뒤에는, 이제 강북엔 더이상
재고가 없으니 남들은 이걸 못 먹겠구나 하는 미안함이. 한정판 와인도 아니고, 재고가
비었으니 점원은 곧 그 이상을 들여놓을 테지만 어쨌든 욕심껏 내 배만 채우려했단
죄책감이 그날 저녁을 드리웠다. 다른 것에는 탐욕이 없는데 와인만큼은 자제하질 못 한다.
그건 내 삶을 드러내는 가장 정확한 지표겠지. 와인때문에 즐거운 것도 사실이고
대단한 와인을 찾아 마시지도 않는다. 기껏해야 한 병을 비우는 정도고, 음식과의 페어링에
까다롭지도 않고 숨은 포부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어느새 와인은 내 확실한 길티 플레져가 됐다.
머잖아 결국 나는 와인 때문에 괴로워 지겠지. 중독은 끝이 뻔하니까. 그래도, 지옥으로
가는 길 곁에는 와인병이 놓여있을 거라 덜 괴로울 거라고 스스로를 위무했다.
좋은 사람들과 가장 좋은 곳에서 좋은 와인을 함께 마시겠다는 꿈은 불가능해졌다.
이제 남은 것은 불안을 견디며 이 땅에서 한둘 씩의 작은 자리만을 연명할 뿐이다.
친구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남은 이들조차 안에서부터 무너져간다. 나는 술자리말고
다른 방법으로 그들을 지켜야 하지 않을까? 어떻게?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 소리는 귓전에 찰랑거리는데. 바람 소리는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매어 우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