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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동시장 바나나 본문

뛰어라, 여기가 로도스다

경동시장 바나나

진광불휘 2024. 10. 18. 00:04

 

경동시장의 과일 골목에는 바나나만 취급하는 점포가 둘 있다.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두고 대각선으로 대략 마주보는 두 가게는 송이바나나를 취급하지 않고 낱개의 바나나를 일정 단위로 묶어 판다. 4개에 천원, 14개에 3천원 식으로. 송이 상태가 완전치 않은 바나나를 뭉텅이로  떼다가 그중 괜찮은 것들만 골라 파는 방식일 게다. 그때그때 시가에 따라 바나나의 크기와 양이 달라진다. 아무튼 시중에 비해서는 엄청 저렴하다. 

A점포는 상대적으로 크고 긴 바나나를 취급한다. 사실 여기가 가장 싸다. 때로는 천원에 10여개씩 묶어 팔 때도 있다. 그럴 때면, 이 세상엔 바나나보다 더 싼 음식이 없다고 생각될 정도다. 보기 좋은 것들이 인기도 많아 이 집엔 종종 줄이 늘어진다. 몇 시부터 영업하는지 모르겠으나, 오후 늦게 가면 점포가 문을 닫았을 때가 있다. 

식사로도, 늦은 오후 간식으로도 바나나만한 게 없다. 먹기도 간편하고 맛도 좋다. 칼륨이 많아 짜게 먹는 한국인한테 특히 좋은 과일이다. 가지고 다니기도 쉽고 가격까지 만만하니 늘 반갑다.

B점포는 자잘한 크기의 바나나를 판다. 그래서 A보다 갯수를 더 많이 챙겨주는데, 가격 대비 중량으로 따져보면 아무래도 A에 비해 20% 정도 더 적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A보다 손님이 적다. 대신 더 늦게까지 판다는 장점이 있다.

이번에 장을 보면서 또 A에서 사려다가, 대기 손님이 많고 재고가 얼마 없어 보여서 발을 틀어 B에서 구입했다. 역시 갯수는 적지 않았지만 알이 작으니 좀 그랬다. 좀 기다려서 A에서 살 껄.

집에 와서 먹어보고는 좀 놀랐다. 바나나가 아주 맛있었기 때문이다. 세상에, 바나나가 원래 이런 맛이었나? 이렇게 신선하고 쫀득했나? 달큰하지 않고 상큼한 향기를 품은 과육이었나?

과일은 큰 게 좋다고들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경쟁 점포와 비교해 양이 적으면서도 B가 장사를 계속할 수 있었던 이유를 비로소 알았다. 다 비슷한 거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는 거, 그 점을 알아주는 이들이 여럿 있다는 사실도. 

이 배움을 단지 바나나 쇼핑에만 국한할 필요는 없겠다. 
그렇게 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