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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라, 여기가 로도스다

전화

진광불휘 2024. 10. 7. 17:21

 

친구는 운전할 때마다 전화를 한다. 그 운전이 지루하고 재미없는 일이기 때문일 거다. 집에서 목적지까지 이르는 왕복 한두 시간의 무료함을 메꾸려고 그는 굳이 전화를 걸어서, 중요하지 않은 질문을 이어붙이고, 내용없는 수다를 떤다. 처음엔 몰랐지만 여러 번 연락을 받으면서 그가 시간을 떼우려고 이러는구나 알게 됐다. 그런 건 누구에게나 금방 느껴진다. 성의없는 거 말이다. 

예전에 그가 출퇴근 때문에 일요일 밤과 금요일 오후에 똑같이 그런 전화를 걸어왔을 때는 맘이 참 안스러웠다. 편도로 3시간 넘게 고속도로를 달려야 하는 일이 얼마나 고역일까 공감했던 까닭이다. 하지만 이제 그럴 일이 없는데,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장소를 찾아가는 와중에도, 다시 말해 즐거움을 추구하는 과정에서도 잠시의 심심함을 참지 못하고 전화를 걸어댄다. 이 전화를 받는 사람이 나만이 아님에 배팅을 할 수도 있다. 순간의 감정과도 무관하고, 삶을 꿰뚫는 각성과도 관계없는 그야말로 아무런 영양가 없는 말들을 늘어놓는다. 

자동차에는 그런 한때를 피하기 위해 고안된 장치가 꽤 있다. 예를 들면 라디오가 그렇고, 음악이 그렇다. 휴대폰과 연결하면 재미난 팟캐스트를 들을 수도 있고, 오디오북을 다운받아 운전하며 책을 읽을 수도(=들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는 굳이 친구를 소환한다. 그 애매한 짬에서 쓸모나 의미를 구하려고 들지는 않는다. 그저 타인의 목소리로 이 지루한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란다. 이 친구가 안 되면 저 친구에게, 저 친구가 안 되면 그 친구에게 전화를 건다. 

그가 전화를 거는 궁극적인 이유는 외로워서일 것이다. 여생은 한참인데, 마음이 통하고 희노애락을 같이 나눌 도반이 없어서. 왜 아니겠나. 2년 전부터 나도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으니. 그러나 친구여, 우리를 외롭게 하는 것은 타인이 아니다. 우리 자신이다. 타인을 배려하기 보다, 오직 제 필요에 의해서만 누군가를 쉽게 가져다 쓰려고 할 때 우리 곁에 남을 사람, 내 마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위해줄 사람은 점점 줄어들 것이다. 우리가 외로워서 하는 짓들이 오히려 우리를 더 외롭게 만든다.   

나이듦을 한자 그대로 노화로 바꿀 수도 있겠으나, 그간의 경험을 거울 삼아 타인의 입장에서 이렇게도 저렇게도 생각해 보는 일일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꼰대가 되도 무방하다. 그렇지만 괜찮은 꼰대가 되자. 보지 않아도 뻔히 보이는 일이 있다. 이 고비를 부디 잘 넘기자, 친구여 아니, 우리 모두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