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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서울창포원과 동부시장 고향만두 본문
이십 년 만에, 모 인터넷서점의 창립동기였던 K를 만났다. 그는 의정부에 살고, 나는 성북구에 사니 가운데 쯤인 도봉산약의 서울창포원에서. 그가 오후에 일이 있어 이른 점심에 만나, 손두부집에서 정식을 먹고 창포원에서 차도 마셨다. 이십 년 만인데 마치 지난 달에 만났던 사람처럼 순순하고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기억나냐며 그는 가방을 열어 이십 년 전 문서를 꺼냈다. 전부 그 인터넷서점 시절 내가 작성했던 문서였다. 오픈 일정표, 보도자료, 아이디어 모음... 깜짝 놀라 물었다. 아니 이걸 왜 갖고 있어요? 그는 웃으며 답했다. 그 시절이 제게는 첫 직장이라서 이 문서들로 일을 배웠거든요. 이 다음 회사에도, 다음다음 회사에서도 다 이걸 보면서 일했어요. 지금 보니까 별 것 아닌것 같지만, 그때는 정말 굉장해 보였죠.
그렇지만 사실 굉장한 것은 K다. 이 하찮은 자료들에서 매번 새로운 작업을 길어냈을테니. 이렇게 꼼꼼하게 문서를 모으고 이십 년이 지난 뒤에도 그게 어디 있는지 바로 알아 가져올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정말 굉장한 일이다. 우리 나이쯤 되면 여러 굴곡을 거치게 되는데, 무탈하고 평온하게 일과 가족과 자신을 한결같이 지켜오는 일은 결코 만만치 않다.
함께 있는 두어 시간 동안, 그는 이야기하기보단 주로 내 말을 들어준 것 같다. 그는 창포원처럼 품넓게 다 받아들여 줬다. 모르는 이가 봤다면 그가 선배였거니 했을 것이다.
출근해야 하는 그를 먼저 보내고, 창포원 그늘에서 두 시간 쯤 책을 읽는 다음, 7호선을 타고 상봉역으로 가 동부시장에 들러 고향만두를 찾았다. 아쉽게도 점주님 개인사정으로 문이 닫혀 있었다. 근처 다른 분식점에서 저녁을 때우고 귀가했다.
진지하고 충실하게 일상을 꾸려온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참 좋구나. 딱히 유머러스하거나 호들갑을 떨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알아주면서 하하하, 웃게 된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고립은 그런 사람들과 교류가 끊어지면서 벌어진 일이기도 하다.
그와 들른 창포원 내 카페는 5월 중순이면 영업을 끝낸다고 한다. 모든 일에는 시기가 있고 끝이 존재한다. 나도 그저 생각만 말고 할 수 있는 바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