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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씨의 명복을 빕니다 본문
지난 주, 한국도 아닌 베트남에서 당신의 부음을 들었지요. 카톡으로 본인상 부고를 받고 조의금을 송금하면서 이국의 푸근했던 그날 밤은 머리 속에 넘쳐오는 다사로운 기억들로 한 순간에 재난으로 뒤바뀌었죠. 저는 여전히 그 후폭풍에 휩싸여 있습니다.
당신의 생은 너무 짧았어요. 대학을 졸업 후 어려운 환경에서도 유학을 가기로 결심한 후 25년, 연금술사님의 시간은 전부 일과 운동에 남김없이 바쳐졌습니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강의와 사업을 병행하면서도 공공적 관점과 진보적 가치를 굳건하게 담보하며 NGO인 도시연대를 만들고, 개인 사업장 역시 자신은 월급조차 거의 가져가지 않는 헌신으로 한평공원과 장애인/비장애인 공동 놀이터를 만드는데 크게 이바지하셨지요. 그 바쁜 와중에서도 커뮤니티 디자인에 관한 여러 저술을 출간하셨습니다. 당신의 24시간은 저같은 평범한 이들의 72시간에 갈음했습니다.
무엇을 보셨는지 저를 어여삐 생각하셔서, 지난 20여년 간 꾸준히 개인적인 시간을 할애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가끔 함께 와인을 마시고, 카페를 찾았으며, 때로는 그냥 놀러 다녔지요. 선생님이 첫 번 째로 암에 걸려 두려움 속에서 수술을 기다리던 당일에도 제게만은 귀띰해 주셨습니다. 1차 항암을 마치고 고대 앞 카페에서 다시 만났던 때가 떠올라요. 선생님의 낯빛이 어두웠지만 표정은 밝아서 아 이제는 괜찮으시겠구나 혼자 안심했더랬죠. 그 뒤로도 몇 번 더 차를 마시고, 선생님이 2차 전이로 다시 요양병원에 입원하셨을 때도 면회할 수 있었습니다. 그게 벌써 6개월 전이네요.
가장 최근 소식은 동생분으로부터, 당신이 호스피스 병원으로 옳기셔야 한다며 간병인을 추천해 달라는 부탁이셨습니다. 그 뒤로 보름, 이렇게 이른 부고를 받게 되네요. 삶이란 참, 이렇듯 어쩔 수 없이 허망한 것이기도 한가 봅니다.
제게 개인적인 짬은 내주셨으나 선생님 자신에게조차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 부단하고 치열한 삶이어서... 저는 당신이 스스로에게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허나 이 짧은 생에 무엇이라도 이루려거든 당연히 그래야하는 일이겠지요. 게으른 후학은, 당신을 그리워한다는 핑계로 스스로의 부지런하지 못함을 이렇게 변명하나 봅니다. 그래도 왕왕,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자신을 내려놓는 여유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당신은 휴식차 떠났던 여행조차 모두 답사였고, 연수의 일환이었으니까요.
완치는 불가능하지만, 거동할 수 있게 되면 제가 다낭에 모시고 가겠단 약속을 했더랬지요. 끝없이 이어지는 해변, 굽이굽이 물결치는 다함없는 해안선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건 아마 당신의 삶이 여기서 끝나지 않고 여전히 남아있다는 은유일 것이었으므로.
그러나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네요. 선생님. 합리주의자로서 우리는 다음 생을 논하지 않았으니 그 약속은 폐기되었다고 해야 옳겠지요. 또한 당신이 이렇게까지 온힘을 다해 일한 것은 이 삶이 오직 한 번 뿐이기 때문이기도 하니까요.
그러나 선생님, 만약 한 번 더 삶이 허용된다면, 그때는 선생님을 잠시 일에서 떼어내, 저 길고 긴 바다에 모시고 가고 싶습니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시간 속에서 당신과 함께 속없이 깔깔 웃어보고 싶어요.
언제나 든든하고 속 깊었던 사람, 믿을 수 있고 또 의지가 되었던 사람, 사랑받기보다 먼저 사랑하는 걸 선택했던 사람, 그래서 항상 누군가를 챙기느라 자신만은 도저히 쉴 수 없었던 사람, 연금씨의 명복을 빕니다. 더 이상 육체의 고통이 없는 곳에서 평화를 찾으셨길 빕니다.
당신의 이름 앞에 '옛 고'를 붙여야 하는 일이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 친구, 정원선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