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Tags
- 제천 스물두 개의 아스피린
- 슬픈책
- 롤랑 바르트
- 같이가치
- 제천여행
- 박주민
- 세월호
- 제주
- 강정 해군기지 반대
- 북구기행
- 도시에세이
- 세월호책
- 스토리펀딩
- 최강현
- 사진
- 세월호 참사
- 제주 해군기지 반대
- 416
- 4.16연대
- 제천
- 사랑의 단상
- 4.16
- 제천 책
- 제주풍경화
- 잊지않을게절대로잊지않을게
- 세월호참사
- 정원선
- 배영란
- 제주 풍경화
- 소도시 여행
Archives
- Today
- Total
점점
조지훈 시, "병에게" 본문
어딜가서 까맣게 소식을 끊고 지내다가도
내가 일손을 떼고 마악 안도의 숨을 돌리려고 할때면
그때 자네는 어김없이 날 찾아오네
자네는 언제나 우울한 방문객
어두운 음계를 밟으며 불길한 그림자를 이끌고 오지만
자비는 나의 오랜 친구이기에 나는 자네를
잊어버리고 있었던 그 동안을 뉘우치게 되네
자네는 나에게 휴식을 권하고 삶의 외경을 가르치네
그러나 자네가 내게 속삭이는 것은 마냥 허무
나는 지그시 눈을 감고, 자네의
그 나직하고 무거운 음성을 듣는 것이 더 없이 흐뭇하네
내 뜨거운 이마를 짚어주는 자네의 손은 내 손 보다 뜨겁네
자네 여윈 이마의 주름살은 내 이마보다도 눈물겨웁네
나는 자네에게서 젊은 날의 초췌한 내 모습을 보고
좀 더 성실하게, 성실하게 하던
그 날의 메아리를 듣는 것일세
생애의 집착과 미련은 없어도 이 생은 그지없이 아름답고
지옥의 형벌이야 있다손 치더라도
죽는 것 그다지 두렵지 않노라면
자네는 몹시 화를 내었지
자네는 나의 정다운 벗, 그리고 내가 공경하는 친구
자네가 무슨 말을 해도 난 노하지 않네
그렇지만 자네는 좀 이상한 성밀세
언짢은 표정이나 서운한 말, 뜻이 서로 맞지 않을때는
자네는 몇날 몇달을 쉬지 않고 나를 설복하려 들다가도
내가 가슴을 헤치고 자네에게 경도하면
그때사 자네는 나를 뿌리치고 떠나가네
잘가게 이 친구,
생각 내키거든 언제든지 찾아주게나
차를 끓여 마시며 우리 다시 인생을 얘기해보세 그려
- 조지훈 <병(病)에게> 시 전문
=============
조지훈 선생이 투병 중 쓰셨다는 생애 마지막 작품. .
서늘하게 되읽히는 구절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