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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라, 여기가 로도스다

알다가도 모를

진광불휘 2023. 8. 18. 10:49

 

다닌 지 10년이 넘었으니 단골이라도 해도 무방하겠다. 동네 어귀의 미용실 얘기다.
 
한 달 반 간격으로 들른다. 미용사는 한 분뿐이고 그분이 사장님이다. 남편이 있는 걸 몇 번 봤는데 미용은 않는 듯 하고 그 외의 일들을 맡는 것 같다. 너무 수다스럽지도 또 너무 무뚝뚝하지도 않은 중년과 노년 사이 그 어디쯤의 연배인데, 오늘은 커트하면서 생전 안하던 반말을 별안간 하시기 시작했다. 그간 한 번도 그랬던 적이 없으셔서 좀 당황했다. 뭐 어르신들의 '나이주의'는 익숙한 터라 별 반감은 없었지만.
 
"지난 주에 휴가를 다녀왔는데 더워서 죽을 뻔 했어."
"어디 다녀오셨어요? 제주도? 부산?"
 
참고로, 나는 스탭이 말을 걸어오지 않으면 절대 말을 먼저 건네는 편이 아니다. 설령 질문을 받더라도 간단명료하게 의사만 전하는 쪽. 그러니까 이건 예외 중의 예외인 상황. 그래서 한편 흥미롭기도 했다.
 
"해남인데...  그 시골도 그렇게 덥더라니까!"
"와, 멀리 다녀오셨네요. 해남이면 땅끝이잖아요?"
"해남에 엄마가 계셔서.. 휴가 겸 찾아뵐 겸 다녀온 거지. 거기가 바닷가잖아. 그럼 바닷 바람 불어서 시원할 것 같잖아? 근데 그렇지가 않더라니까. 더워서 밖에 다니질 못 했어. 밤에도 후텁지근한 게 서울이나 별 다를 바가 없더라구."
"그러셨군요. 아이고, 어쩐대요. 도시가 아니면 시원한 맛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이제 한국도 여름에 피서갈 데가 없어. 전국이 다 이 모양이야. 집에 있는 게 제일이야."
"지금 길에도 나다니는 사람이 없어요. 너무 뜨거우니까요. 저도 올해는 그냥 집콕하려구요."
"그러게 말야... TV 보니까 잼버리도 난리더만..."
 
상황은 특별했지만 커트는 전과 다름 없었다. 곧 끝났고, 또 오겠다, 잘 가라 인사를 나누고 미용실을 나왔다. 그냥 일상의 헤프닝이었던 이야기.
 
사장님은 오늘 왜 그랬던 걸까. 십 년쯤 다녔으니 이제는 편안해져서? 아니면 너무 더우니까 말꼬리도 길게 끌기 힘들어서? 올 여름부터는 하대하기로 돌연 결심하신 거?
 
알다가도 모를 일이지만, 그렇다고 미용실을 바꾸진 않을 거 같다. 원체 남 얘기 듣는 걸 좋아하는 터라 되려 좋기도 하다. 오늘도 끔찍한 뉴스가 있었다. 와해되어가는 사회안전망이 결국 개인의 피해로 귀결되고 있는 건 아닐지. 그럴수록 지역사회가 조금 더 끈끈하고 다감하게 연대하길 바란다. 우리는 모두 서로의 환경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