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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라, 여기가 로도스다

샐러드

진광불휘 2023. 4. 16. 22:43

 

고개 하나를 넘은 김에 집에서 안주를 만들었다. 선물받은 파프리카 한 개를 손질하고, 남은 당근도 썰고, 납작토마토 한 알을 세세히 갈라서, 미리 물에 담가 매운기를 빼둔 양파 한 개까지 칼질해 큰 접시에 담았다. 그래놓고 보니 양파는 너무 많고 당근은 한줌이어서 밸런스가 맞지 않았다. 어쩔 수 없지. 올리브유를 붓고, 발사믹 식초를 살짝 쳐서 쓱싹쓱삭 비볐다. 고명이 많아 오일식초를 얼마나 부어야 할지 감이 오지 않는다. 일단 섞자, 대충 되겠지.
 
가라아게와 만두도 냉동실에서 꺼내 오븐에 데울 요량이다. 아무래도 메인 요리는 있어야 하므로. 오븐이 덥혀지는 사이, 캘리포니아 와인을 열어 한 잔을 따랐다. 곧 땡, 하고 조리가 끝났다. 가라아게도 만두도 따끈따끈하게 속까지 구워졌다. 대충 샐러드는 양파가 수북하긴 했어도 신선한 덕분인지 맛이 좋았고, 와인도 부드러운게 잘 어울렸다. 이만하면 만족스러운 저녁 겸 만찬이다.
 
편집장님이 보내준 합천 파프리카, 제주 강정에서 온 한라봉, 양평에서 딴 토마토, 군산에서 온 양파, 스페인에서 만든 유기농 올리브오일, 이탈리아산 2년 묵힌 발사믹 식초, 마지막으로 미국에서 건너온 까버네쇼비뇽 포도주. 메인 안주에는 공장식 축산 닭과 돼지고기가 들어있지만 나머지는 거의 채식이다. 주요리도 비건이나 락토, 페스코로 바꿔보고 싶은데 쉽지 않다. 비용의 문제뿐 아니라 선택권이 많지 않다는 한계도 있다.
 
하지만 지금의 식탁도 꽤 시간을 들여 바꿔온 것이기도 하다. 완벽히 넘어가지는 못 했어도 비중을 줄이려고 노력해온 결과다. 고기라는 예전의 대체불가능한 식단은 이제 콩단백질에 상당부분 자리를 넘겨주었고 절대량이 계속해서 감소하고 있다. 만족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좋은 변화다.
 
그러나 가끔 피곤하고 짜증이 쌓일 때면 몸은 저도 모르게 익숙한 육식을 찾는다. 대체제를 충분히 마련해 두고 미리 대비해야겠다. 인생에 Dog Day가 없을 리는 만무하니까.
 
샐러드,그러니까 신선한 야채가 있다는 것은 아주 강력한 위안이다. 나물류의 전통적인 한국식 채소는 씻는 데도 품이 많이 들어가고 조리과정도 까다로우며 보관에도 주의할 점이 많다. 싱싱함을 최대한 살려 그날 먹을 야채를 되는 대로 썰어 아주 간단한 양념(오일식초!)만 쳐서 그대로 먹는 게 제일이다. 부족하다 싶으면 현미밥과 비벼먹거나 전자레인지로 익힌 두부와 함께 먹어도 그만이다. 와인과도 잘 어울린다. 굳이 따지자면 레드보단 화이트가 좀 더.  
 
샐러드의 익숙한 병칭은 일본에서 건너온 그대로 사라다,다. 예전에 사과와 귤, 야채를 어슷썬 것에다 마요네즈로 버무려 상에 올라왔던 퓨전식. 그런데 때때로 그게 그리울 때가 있다. 이번 주엔 비건 마요를 사다가 일본식 샐러드를 만들어볼까. 레드 와인과도 잘 맞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