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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를 반박할 수 없다면

진광불휘 2023. 1. 30. 10:49

 

 

 

운동에 오래 머문 까닭인지 어떤 일을 여럿이 같이 하게 되면
맨 먼저 이러면서 가장 나쁜 일은 뭐가 있지? 라고 자문하게 된다.
최악에 최악이 겹친 상황을 가정해 놓고 출발하는 것이다. 그래놓고 나면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그다지 당황하지 않게 된다. 이럴 수도 있었는데 이 정도 쯤이야 받아들이지 뭐.
하는 수긍의 효과가 생기는 것이다.
 
이럴 때 최악의 상황은 정말 극단의 경우가 여럿 겹친 일을 상정해 보는 거다. 
당연히 이런 생각도 해놓게 된다.메세지를 반박할 수 없다면 메신저를 공격할 거다.
메신저를 나쁜 놈으로 만들겠지. 그게 이 상황과 아무련 관련이 없을 지라도.
그래야 메시지 자체를 의심하게 만들테니. 아주 비논리적이지만 감정을 뒤흔드는 방법이니까.
 
그런 일을 운동이 아닌 분야에서도 겪는다.
메시지를 공격할 수 없다면 메신저를 공격하는 일을.
어이가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연한 일을 포기하진 않을 테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은 언제나 질문이다.
됐어? 우리가 이렇게 싸운게 이런 걸 위한 거였어? 우리가 가 닿고 싶은 지점은 어디였지?
대충 무마하지는 않겠다. 질문조차 하지 못한다면 현실은 그보다 훨씬, 훠얼씬 더 참혹할 테니.
 
설령 내가 배제되더라도 누군가 같은 질문을 이어가길 바란다.
혼자 하는 싸움이 아니길. 그러면 된다. 우리는 결국 역할을 통해 살아기기도 하니까.
 
최선을 다한다고 늘 다짐하지만, 그 최선은 현실에 묻힐 때가 많다.
어쩔 수 없지, 라고 혼자 포기하고 마는 때가. 한 순간 좌절하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으니
그러니 싸우면서 우리가 서로를 신뢰하길 바란다. 기복이 있어도 누군가 잠시 사라져도
해야 하는 일은 같으니까. 대신 그 자리를 맡아줄 수 있으니까. 
 
다시 한번 최악의 경우를 상정한다.
그렇더라도 질문은 같다. 이게 무엇을 위한 것인지. 누군가 있었디면 이런 질문을 피했을지.
그래서 어쩔 것인지. 나는 여전히 지금이 최악의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해 볼 수 있는 게 
있으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상상만 하는 상황이야말로 최악이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든 뭔가 해야지. 그렇지 않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