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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라, 여기가 로도스다

조쉬 Josh

진광불휘 2022. 11. 9. 14:11

 

지난 토요일에 시험을 봤다.

초여름부터 준비해 강의를 듣고 실기와 실습까지 이어달렸으니 간단찮은 일정이었다. 도중에 코로나에 걸려 강사님들을 전부 검사받게 만들고, 교육원 전체가 휴강하게 만드는 해프닝도 벌였다. 덕분에 합격을 해도, 합격증은 빠진 실습이 보강되고 나서야 받게 될 예정이다. 백 명에 가까운 인원과 매일 9시간씩을 함께 지내는 일이 은근 거추장스러웠는데 아무튼 일단락이 됐다는 데 안도한다. 어쨌든 끝났어.

게다가 시험까지 갑자기 오전반, 오후반으로 나뉘어 치러진데다가(그만큼 응시인원이 많았단 뜻이겠지), 시험장도 멀어 꽤나 스트레스였다. 거리만 먼 게 아니라 구석에 콕 박혀 있는 묘한 중학교에서 치러졌지. 게다가 답안 작성을 끝내고도 종료 벨이 울릴 때까지는 퇴실할 수 없는 규칙이었다. 안 그래도 오후반이라 토요일 하루를 다 말아먹은 셈인데 꼼짝마라 명령까지. 참 가지가지하네.

시험을 마친 후 늦은 점심 겸 저녁을 먹고, 간단히 장을 봐 돌아오니 이미 깜깜해졌다.  11월은 마치 채근하는 것도 같다. 어찌나 해가 짧은 지. 이제 6시도 되기 전에 어두워진다. 

부담이 큰 하루여서 피곤하기도 했고 그냥 일찍 잘까 하다가 그래도 큰 일정 하나를 끝냈는데 작게라도 기념은 하자 싶어서 오븐에 가라아게 돌리고, 바게뜨 사온 것과 과일 좀 자르고 감자칩과 초콜릿 꺼내서 안주 한 접시를 만들었다. 와인을 뭐 먹을까 고민하다 저번에 사온 비싸지 않은 미국 와인이 있어 그걸 열었다. 조쉬 까버네 쇼비뇽 Josh Cabernet Sauvignon. 2만원 채 안 주고 구입한 듯.

대충 안주에다 고만고만한 값의 와인이니 큰 기대없이 한 잔을 들이켰지.

오, 이거 맛있네. 

시험이 끝난 토요일 밤에 TV나 틀어놓고, 외로이 홀짝홀짝.

그런데도 나쁘지가 않아. 향이 확 퍼지거나 꽃향기가 가득한 건 아닌데 은은하게 잘 풀리고, 타닌은 부드러우며, 까쇼 최고의 풍미 가운데 하나인 블랙베리의 맛이 또렷해서. 

라벨에 쓰여진 문구를 보고 포도주를 고르는 호구는 없을 거다. 3천원 짜리도 1억 짜리도 어쩌면 그렇게 되도 않는 과장된 찬사 투성인지. 그런데 가끔 정직한 와이너리가 있단 말이지. 라벨에 쓰여있는 게 실제로 다 감지되는. 

구운 개암(헤이즐넛)과 계피의 향기가 난대. 맞아. 희미하지만 그랬어. 거기에 커피 내음도 더해서. 

제일 좋은 건 아무래도 목을 넘어갈 때 느껴지는 부드러움, 그리고 단순하면서도 투박하지 않은 미국 까쇼 특유의 맛. 

블라인드로 마셨다면 최소 4~5만원은 하는 와인이라 여겼을 거야. 그만큼 좋았어. 혼자 마시는 데도 꿀떡꿀떡 잘 넘어가서 하마터면 한 병을 다 비울 뻔 했지. 나는 헤비드렁커와는 거리가 머니까 딱 절반에서 2/3 정도가 적정량이야. 

다음에 마트에 간다면, 그리고 같은 가격에 팔고 있다면 박스로 사야 할 와인. 혼자 먹어도 좋지만, 둘이 먹으면 훨씬 더 행복해질 와인. 위무의 다른 이름, 조쉬 까버네 쇼비뇽 Josh Cabernet Sauvign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