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묘한 성실성 본문

뛰어라, 여기가 로도스다

묘한 성실성

진광불휘 2026. 10. 26. 00:00

 




출국 전날 밤 현미밥을 지어 냉동실에 차곡차곡 쟁여놓았다.
새벽 출국이므로 아침을 먹지도 않고 귀국 시간도 한밤중이기에
딱히 밥이 급한 것도 아닌데. 심지어 여분도 있었지만.

묘한 데서 발휘되는 성실함이 있다. 호텔 체크아웃 전에
침구를 정리한다든가, 혼자 객실을 쓸 때도 욕실 사용 후
바닥의 물기를 하수구로 쓸어넣는다든가 하는. 
사실 그럴 이유가 없다. 욕실 역시 내버려두면 곧 마른다.
다시 쓸 때 축축한 경우는 99% 없다. 

반대로 이상한 게으름을 피울 때도 있다. 
이번 여행은 여러 번 일정이 바뀌면서
출국 전날까지 짐을 싸지 않았다. 
몇 시간 전에야 비로소 끙끙대며 캐리어에 담았다. 
일정이 길어 옷도 적잖이 가져가야 한다. 
중간에 세탁소를 이용하더라도 

여기는 가을이나 거긴 여직 여름이니까 챙길 게 많더라. 
모기기피제, 샌들, 선크림, 가려울 때 바르는 약,
햇볕 화상 연고 등,
오랜만에 위탁수화물이 포함된 항공권이라
와인도 두 병 집어넣고.

매달 출국하다시피 하는데
짐을 싸는 건 익숙해지지 않는구나. 
그래도 막상 떠나있으면 또 홀가분해지지. 
고국의 중력에서 벗어나니까. 

언제쯤 되면 이 보이지 않는 쇠고리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아직 너무 이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