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라, 여기가 로도스다
가을날
진광불휘
2024. 9. 21. 22:23
날이 시원해지면서 저절로 많이 걷게 된다. 온화한 날씨의 바람 부는 날, 몸을 쓰는 일은 상쾌하다.
오늘도 점심에 D도서관 들러 책을 보다가, 돌려줄 책 한 권이 K도서관 것임을 확인하고 상호 반납이 되는데도 20분을 걸어 K도서관으로 가 반환했다. 온 김에 다른 책도 읽고. K도서관의 환경이 D도서관과는 비교할 수 없이 안락한 점도 있으니.
오가며 청과상에서 오이와 파프리카도 샀다. 값이 좋아서. 알다시피 지금 채소는 금값이다.
딱히 좋거나 즐거운 일은 없다. 하지만 평화는 그 자체로 귀중하고 필수적인 여건이다. 그러니 지금은 어쨌든 평안한 시절.
멍하니 있자면 자꾸 2년 전 생각이 난다. 몸을 움직여 일하고 공부하는 게 옳다. 이제와서 결핍은 어쩔 수 없는 것, 익숙해지는 게 낫지.
귀갓길에 최성수의 노래, <남남>(1986)을 흥얼거렸다. 중학생 시절 매일같이 부르던 애창곡이었는데, 그 어린 시절에 왜 그렇게 이 노래가 마음에 사무쳤는지. 실연을 제대로 겪어본 적도 없으면서. 노래의 가장 애달픈 데는 "슬픔이 물처럼 가슴에" 할 때 가수가 가, 에서 음을 높이고, 슴에, 하며 다시 음을 내리는 부분이다. 아주 큰 무언가를 꿀꺽 삼키는 듯 하여 듣고 있자면 마음이 죄어왔지.
그러나 정말 큰 고통은 헤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지금은 안다.
불로 만든 옷의 끝자락 같았던 9월도 이렇게 간다. 돌아오면 완연한 가을일 터. 한 해의 종장을 잘 마무리하자. 끝까지 힘을 써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