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라, 여기가 로도스다

오전 11시 아파트 실내온도 29도

진광불휘 2024. 9. 1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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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오도 되기 전인데, 집의 거실 온도가 29도를 가리켜서 동네 도서관으로 피신했다. 안타까운 점은 외부 기온이 35도였으나 바람이 불어서 집보다는 나았다는 거. 개학한 덕분인지 자리가 널널해 상호대차한 사쿠라 모모코의 에세이 2권을 그 자리에서 읽고 반납했다. <마루코는 아홉살>의 작가가 쓴 산문인데, 애니메이션 그대로여서 순진하고 코믹하다. 일부러 웃기게 쓰려고 그런 게 아니라 다른 관점으로 다른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이라 결과적으로 이런 글이 나왔다는 게 좋았다. 병환으로 50대에 세상을 뜬 게 안타까울 따름. 회사가 있어 그의 만화는 계속된다지만 더 이상 육성이나 육필을 볼 수 없는 건 정말 아쉽다. 유고작이 된 그의 산문집을 전부 소장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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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뜻밖의 사람들과 오랜만에 이야기를 나눴다. 유심칩을 교체하면서 대화창을 날려 연락처를 잃어버렸던 V국의 C가 메신저로 말을 걸어왔다. 언제 V국으로 '돌아오냐'며. 어떻게 연락 한 번 없냐고 따지는 거였다. 저번 친구의 취재차 들렀을 때 그가 정말 많이 도와줬지. 고생해 놓고 수고비조차 받지 않겠다해서 놀라기도 했다. 그냥 선의로 한 일이라며 내게 '당신은 친구한테 돈을 받냐?'라고 되물었더랬지.  본의아니게 연락이 끊긴 걸 사과하고 잘 지냈냐고 물었다. 4개월여 동안의 안부를 교환했다. 그의 말대로 올해 말쯤에 '돌아갈' 예정이 있다. 작은 선물이라도 챙겨서 찾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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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친구 J에게 전화를 걸었다. 멀리 떨어져 있어 자주 만날 수 없지만 매주 한 번은 전화하려고 한다. 심심해서는 아니고 그래야 할 것 같아서. 워낙 사람을 잘 챙기는 친구이고 받은 은혜가 많기도 하지만, 그와는 상관없이 그가 타향에서 혼자 살고 있는 까닭에 어쩔 수 없이 고독할 것 같아서다. 한 주 내내 아무하고도 대화를 나눌 수 없는 심정을 안다. 물론 나하고는 비교할 수 없이 관계가 넓은 친구고, 매주 술 약속을 만들어 지인들을 만난다지만 그때 이야기하는 것과 친구와의 대화는 또 다르다고 생각하니까. 덕분에 나도 이야기할 수 있고 좋다. 뭐 사실 내가 더 좋은 지도 모르겠다. 전화는 내가 걸지만, 끊는 건 언제나 친구니까 그런 점에선. 그러나 뭐 어떤가. 그런 건 별 상관없지 않은가. 별 내용도 없는 스몰토크를 매주 10분쯤 나눈다. 여성들은 절대로 이해할 수 없겠지만 이게 15년된 남자들의 우정 통화, 정말 긴 수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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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부터는 계속에서 출장과 여행이 이어진다. 날씨가 여직 무더워서 걱정이다. 그러나 또 최선을 다해 즐겨야겠지. 이 모든 순간이 다시 오지 못할 생의 한때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