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의 계기
절친이 받고픈 추석 선물로 논슬립 양말을 부탁했다. 일부러 부담이 되지 않는 걸 고른 걸꺼다. 그래서 발목 양말 10켤레, 무릎까지 오는 긴 양말 10켤레를 주문해 절친 집으로 배송시켰는데, 긴 양말 재고가 없어 짧은 양말만 배송이 완료됐다는 메시지가 왔다. 그래서 경위를 설명하고 발목 양말을 잘 받았냐 물었는데, 왠걸, 택배를 받지 못했다는 거다.
하필 이런 일이. 부랴부랴 택배기사에게 연락했으니 받지 않아 주문자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택배사쪽에도 확인을 요청했다. 절친에게는 번거롭게 해 미안하다고 말하고 주문자와 택배사의 응답을 기다렸는데... 양측의 확인 결과, 택배는 제대로 도착했다며 수령자인 절친의 동생과 확인 통화까지 했다는 거였다. 응?
다음날 다시 이런 상황을 절친에게 전달하고 택배 못 받은 게 맞냐고 물었는데, '발목 양말'은 왔다고 전과는 다른 대답을 했다. 그래서 내가 앞서 전달한 메시지를 다시 캡처해 '긴 양말은 재고가 없어 못 온다고 했고 짧은 양말만 올 거'라고 했는데 헷갈렸냐고 질문했다. 그러나 길게 톡을 할 수 없고 바로바로 의사소통도 불가능한 절친의 상황상 정확한 경과를 따지는 건 무리였고, 다음부터는 잘 확인하자고 마무리지었다.
온라인 쇼핑은 어쩔 수 없이 문제가 생긴다. 발송이 늦을 수도, 택배가 오배송될 수도, 주문발송 처리가 잘못 되어 상품이 아예 안 올 수도 있다. 그래도 문의 체계를 밟아가면 처리가 안 되는 일은 거의 없다. 심각한 건 딱 우리같은 경우다. 주문자는 A, 수취인은 B인데 배송 연락이나 확인을 받는 사람이 B'일 경우. 절친이 택배를 직접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안되서 그렇게 되는 거지만 이 경우 배송에 문제가 생기면, 복잡한 추적 과정을 거쳐야 하고 오래 기다려야 한다. 주문자도, 택배기사도 잘 배달해 놓고도 불필요한 민원에 시달리게 된다.
일부러 그랬을 리는 없지만, 의사소통의 실수로 그런 일이 생겨 마음이 불편했다. 괜히 그쪽에 주문했나 속이 타기도 했고, 공연히 주문자와 택배사를 들볶은 셈이 돼서 미안키도 했다. 아주 간단한 확인을 구분하지 못한 절친을 원망하기도 했다. 그렇게 2~3일을 개운찮게 보냈다.
절친과 나의 관계는 이미 변했고, 앞으로도 크게 변할 것이다. 번거로운 일들은 꾸준히 있을 거다. 그리고 돌봄은 그런 일들을 자신의 생활로 받아들이는 일이기도 할 거다. 절친도, 나도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독립적인 삶을 꾸려왔고 꾸려갈 거라 예상했지만 뜻밖의 사고로 이제 상황은 격변했다. 이런 일들은 계속해서 일어날 수밖에 없다. 원망할 게 아니라 수긍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귀찮고 번거로운 일들이 일상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건 절친의 잘못이 아니다.
그럼에도 따박따박 잘잘못을 따져야 했던 이번 일이 굉장히 특별하게 다가왔다. 아마 그만큼 내가 준비가 덜 됐으며, 여전히 전과 같은 생활을 지속하려 했다는 뜻이겠지. 반성하고 바뀌어야 한다.
이런 확인이 너무 어렵지 않다면 절친도 보다 꼼꼼하게 확인해주었으면 한다. 의미없는 들볶임에 시달리지 않도록. 그러나 우선 내가 이 일을 전기로, 전환의 계기로 더 많은 절차를 너그럽게 떠안을 수 있길 바란다. 대수롭지 않게 웃으며 이런 일들을 잘 처리할 수 있길.
누군가를 보살피며 산다는 건 당연히 어려운 일이다. 그걸 가족의 짐으로만 떠맡길 수는 없다. 진짜 의지처가 되려면 나부터 갖춰야 할 준비가 많다. 이런 일은 소중한 배움의 기회다.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