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광불휘 2024. 6. 26. 21:30

 

너무 늦게서야 이미 알았어야 했을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는 후회가 생을 점철할 때가 있다. 나 역시 그런 흑감정들 속에서 몸부림치는 밥통이다. 해야할 일이 있었고, 하지 않은 일이 부지기수였으며, 하나마나한 걸 앞세우느라 더없이 소중한 것을 위험으로 내몰았다. 내 죄는 참회 정도로는 씻을 수 없다는 걸 안다. 

그런데 이 늦음은, 지각은 결국 자신의 에고가 결정하는 것이다. 깨닫지 못하는 바를 실행할 방법은 없다. 우리는 스스로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최선을 다한다 해도 실수나 문제없이 완전해질 방도가 없다. 공부는 뒤늦게서야 자신의 어리석음을 발견하고 뉘우치며 고치는 수리다. 배우면 배울수록 자아와 세계에 대해 반성이 늘어나고 의무도 많아진다. 학습은 우리를 끊임없이 겸허하게 만든다. 하지만 배우고 익히는 과정은 세계의 필요와 동시적으로 맞아떨어지지 않아서 우리는 수많은 빈틈과 지연을 만나고 통곡하고 절망한다. 그럴 때 공부는 다시 그 통망을 넘어서 무언가를 해나가는 일이지만 그때도 역시 시의적절성과는 분명히 거리가 생긴다.

깨달음은 어차피 늦게 도착하는 것이니 늦어도 된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늦음은 필연적인 것이고 한계가 뚜렷하지만 그래도 지각 뒤에도 할 일은 여전히 있다는 말이다. 어차피 늦을 수 밖에 없는 깨달음의 숙명을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세계를 보완함과 동시에 자신도 고쳐가자는 제의다. 어쩔 수 없었던 일에 너무 오랫동안 삶을 내주지 말고, 지금부터라도 할 일들을 담대히 하자는 뜻. 

죄는 죄, 일은 일이다. 어느 때건 할 수 있는 일을 해라. 슬픔과 자책으로 여생을 낭비치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