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오오올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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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두 병만 사려고 들렀다. 집 앞 대형마트 와인행사에. 만 원도 안 되는 뉴질랜드 쇼비뇽 블랑과 만 오천원에도 못 미치는 프랑스 끄레망이 나왔기에. 직원 왈, 쇼블이 딱 네 병 남았다길래 주워담았고, 끄레망도 한 병만 사긴 아쉬워 두 병 샀다. 이렇게 여섯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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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를 돌려 계산대로 향하려 할 때 직원이 붙잡았다.
엘 빈쿨로도 최저가에 나왔는데 필요없으세요?
그래요? 그럼 주세요.
20 알데아스도 남은 건 두 병 뿐이예요.
그럼 그것도.
미국 와인은 안 필요하세요? 가격 좋은데.
제가 미국 와인은 좀...
그럼 이탈리아 걸로 그랑 셀레지오네가 이 가격에 나왔어요.
빈티지가 2020이네요. 좀 어린데.
2019 있어요. 드릴까요?
주세요.
더 필요한 거 없으세요? 전화번호 알려주시면 행사 때마다 문자 넣을게요.
음... 이미 갖고 계실 거예요.
그래요? 한번 확인해 볼게요. 전화번호 좀 불러주세요.
010-****-**** 입니다.
맞네요. 제가 가지고 있네요.
(그렇다니까요. 사실 제 번호 지워주셨으면 하는 심정입니다. 지르고 나면 매번 후회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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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산을 마치고 물품을 다시 카트에 넣으며 세어보니 와인이 10병. 2병만 사려고 온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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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와인창고에 이십여 병, 주방 와인랙에도 10여병이 있는데 여름을 앞두고 이런 맹한 짓을. 당분간 마실 짬도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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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게는 샀다지만 이 정도면 사실 총액으로 오바, 오바, 게임 오바다. 이게 뭐하는 짓인지. 매번 뭔가에 홀린 것 같네, 와인만 보면 정신을 못 차려. 이 10병은 또 어디에 쌓아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