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라, 여기가 로도스다
전자레인지와 전기오븐
진광불휘
2023. 9. 14. 00:05
여름이 너무 뜨거워져서 부엌의 가스레인지를 거의 쓰지 않게 된다. 실제로 7월과 8월의 도시가스 사용량은 "0"이었다. 그렇다고 외식하는 건 아니니, 최대한 열이 덜 나고 빠르게 요리가 가능하거나(전자레인지), 뒷 베란다에 있어 상대적으로 열 배출이 용이한(전기오븐) 조리기구를 주로 사용한다.
식사 중 한 끼는 두유와 고구마로 해결하고, 또 한 끼는 반드시 한식을 먹는다. 매주 현미밥을 지어 소분한 후 냉동해 뒀다 꺼내 오이냉국 혹은 미역냉국에다 김, 김치와 같이 든다. 나머지 한 끼가 문제인데.... 그럴 때 전자레인지와 전기오븐이 등장하는 것이다.
일단 전자레인지는 생각보다 효용이 높다. 고구마를 삶기도 좋고, 전용 용기에 두부를 잘라 담은 후 양념장을 만들어 위에 뿌리고 몇 분 돌리면 두부 조림이 된다. 반찬으로도 끼니로도 그만이다. 떡볶이떡을 해동하고, 거기에 어묵, 고추장, 대파, 양파, 고추가루, 설탕을 넣고 물 200ml를 더해 비벼준 후 돌리면 완벽한 떡볶이가 나온다. 계란찜도 가능하고 콩나물밥도 만들 수 있다. 인터넷을 뒤져보면 정말 다채로운 전자레인지용 레시피가 나온다. 물론 맛도 괜찮다.
오븐은 육식에 맞춤하다. 생선도 굽고, (무첨가)소세지와 가래떡을 같이 구워 소떡소떡도 해먹는다. 또 후추, 소금, 올리브유 뿌려서 구웠다 다시 뒤집어 구우면 소, 돼지, 양고기 전부 촉촉하게 기름 쫙 빼서 요리할 수 있다. 저온으로 오래 구울수록 좋은데 단점은 시간이 아주 많이 소요된다는 점, 그러니 계획되지 않은 단시간 조리가 어렵단 점이겠다. 게다가 고기 구울 때 그 한 켠에 냉장고에 있는 야채를 되는대로 썰어두면 구운 채소까지 만들어 줘 영양 균형을 맞출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그래봐야 육식은 한 주에 600g에 못 미치지만.
덕분에 한여름도 무사히 보냈다. 여전히 몸무게는 그 사건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러나 더 줄어들지 않는 것만 해도 얼마나 다행인가. 이제 조금씩 해가 짧아지고 있으니 운동할 수 있는 여건이 더 좋아지겠지. 가을을 목마르게 기다린다. 앞으로 점점 더 그렇게 될 게다.
요리는 생존의 기술이다. 그렇지만 이제야 조금씩 늘고 있다. 한두 번 음식을 만들었다고 레시피가 몸에 붙지 않는다. 여러 번 거듭하고 되풀이해야 음식이 모양대로 나온다. 맛도 점점 더 나아진다. 변형도 가능해지고.
중년이 된 후에야 이렇게 됐다는 게 부끄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능적으로 나아지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쁘기도 하다.
매주 시장을 가고 인터넷 쇼핑도 한다. 계획적으로 식단을 짠다. 와인을 마실 때 곁들이 음식으로 뭘 만들지 매번 생각한다. 과채류를 갖춰두는 건 기본이다. 이렇게 어른(성인)이 된다. 비로소. 이 나이를 먹고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