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광불휘 2023. 8. 30. 01:36

 

친구가 불러준 덕에 오랜만에 바깥 나들이를 했다.
지하철역과 연결된 초대형 쇼핑몰에서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마치 커다란 공원 같은 오래된 대단지 아파트촌을 돌고
다시 몰로 돌아와 영화관에서 노닥거린다.
 
중간에 기분전환 겸 대형서점에 들렀는데
그곳은 내가 알던 책방이 아니었다.
카페처럼 인테리어가 핵심인, 팬시상품과 카페가 우선이고 책도 곁들여 파는 패션샵이었다.
그래서인지 늘어놓은 책들도 하나같이 집어들기 편하도록, 달달하게 읽어낼 수 있도록 제조되어 있었다.
그런 책장들 사이를 헤매는 일이 낯설어 몇 번이나 황망해졌다.
 
서점에서 책을 살펴보지 않은 지 얼마나 됐지?
친구가 아픈 후로는 전혀 방문하지 않았으니 최소 1년 반은 됐겠다.
 
달아나고픈 충동을 견디며 시간을 들여 책들을 살폈다.
내가 경험했다고 믿었던 시간은 아주 오래전이었구나.
인식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되므로 그것이 마음이 들든 그렇지 않든
전부 수용하기로 했다. 노골적인 상품화 현상이 두렵고 끔찍했으나.
 
서점 한쪽이 통창으로 되어 있어 그쪽에는 풍경을 전망하며 앉을 수 있는 긴 의자들이 있었다.
숨구멍을 찾듯 홀연히 그리로 발걸음을 옮기다가 알았다.
 
나는 친구의 사고를 핑계삼아 정보와 인식을 업데이트하지 않고 살아온 대로만 지내려 했구나.
그가 아프든 그렇지 않든 현실은 엄연한 것을.
 
내가 추세에 편승할 필요는 없다. 현실이 맘에 차지 않으면 왜 그런지, 어떻게 해야 바꿀 수 있을지
비평하고 스스로를 보완하며 길을 찾아 내 답을 내놓는 게 옳다. 그저 이게 싫으니까 계속 이렇게 할 꺼야,
는 말이 안 되지.
 
불만족스럽기 짝이 없는 지금의 책들도 또한 그런 사고와 실행의 결과물들이기도 하다.
 
고통은 있다.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지금이 최악이 아닐 수도 있다. 내게도 어떤 일들이 벌어질 지 모른다.
 
그렇더라도 내가 해야 할 일은 마찬가지. 현실을 받아들이고, 거기에서 새로운 모색을 꾀하는 것이다.
도서관은 아주 가깝고 충분히 좋은 세계지만 세상의 전부는 아니다.
 
받아들이고, 다시 판단하며, 나만의 답을 내자.
시행착오를 반영하는 시스템을 다시 세우자.
 
그 날은 아주 귀중한 배움의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