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광불휘 2023. 3. 27. 18:06

 




친구가 병원에 수술받으러 갔던 10개월 전까지 월요일은 늘 이랬다. 정오에 고려대역에서 만나 같이 점심을 먹고 차를 사서 고대 인문캠 벤치에 앉아 한 주간 일정을 짰다. 이번주엔 어떤 집회가 있고 또 무슨 행사가 열리고... 주로 수도권에서 개최되는 진보적인 데모나 간담회, 세미나 등을 살펴보고 참석하거나 모금을 돕거나 같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서 개인별로 나눴다. 모든 행사에 가면 좋겠지만 사실 그럴 수는 없으므로 필참할 이벤트를 일별하고 각자 할 몫을 골랐다. 둘이 함께 가기도 했지만 관심사와 지향이 약간씩 다른 까닭에 최대한 교집합을 맞춰 서로 해야 할 일을 배분했다. 둘 다 매주 1~2건 정도는 참여할 일이 쏟아졌다. 각자 깊숙이 주도하고 있는 건들이 있고 생업도 있어 일정이 어려우면 상대에게 부탁하고 대신 가기도 했다. 월요일은 그걸 서로 의논해 정하는 날이었다. 대신 가야 하는 집회나 행사에서 더 많이 배운다. 우리는 모두 시각 뒤편에 사각을 가진 까닭이다. 그래서 몇 년 혹은 십여 년씩 다니면서 새로이 깨우치게 되거나 별도로 공부하게 되는 일이 많았다. 짬을 내서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쉽지는 않았지만 그것은 우리의 정치성, 사회성뿐 아니라 내면의 싹을 가꾸는 작업이기도 했다. 월요일은 그래서 부담도 컸지만 뜻깊은 시간이었다. 

행사 배분이 끝나면 근처 맥주집에서 생맥주나 와인 한두 잔을 같이 마시고 헤어졌다. 그때는 일 얘긴 전혀 안 하고 일상 얘기만 했다. 응원하는 야구단, 지난 주 만났던 친구 이야기, 잘 되지 않는 모임에 대한 고민, 속 썩이는 가족들에 대한 푸념, 읽었던 책 독후감, 영화나 TV 예능 시청 후일담, 생업 이야기...  영란씨는 술을 많이 마시진 않았지만 한번 입을 열기 시작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여러 화제를 언급하고, 의견을 묻고, 때로는 평가도 했다. 맥파이 수제 맥주를 좋아했고, 너무 진하지 않은 미국 와인과 프랑스 샴페인을 즐겼다. 연어회와 생 모짜렐라 샐러드를 안주로 자주 시켰고, 구운 먹태와 쥐포 땅콩도 선호했다. 종종 오늘은 좀 늦게까지 있자며 2차, 3차까지 자리를 옮겨 밤을 노닐기도 했다.

그리고 작년 5월, 입원한 친구는 그 이후 삶을 잃었다. 여러 번 수술을 받고, 기억을 놓치고, 인지를 회복한 다음에도 병실에 갇혀 일주일에 대여섯 시간의 재활치료를 제외하면 병동 밖으로조차 나오지 못했다. 그는 가벼운 병을 가졌던 환자에서 느닷없이 중환자, 그리고 간신히 생존자로 변했다. 그나마도 병원이나 의사의 도움이 아니라 기적에 가까운 본인의 의지로 끝내 살아남고 험난한 회복 과정을 거치고 있다. 살아남았지만 병실에 묶였다. 코로나로 또 컨디션 저하로 면회가 한참동안 제한되었다 풀린 다음에도, 그가 말을 거쳐서나마 사람들에게 안부를 전한 다음에도 근황은 거의 전해지지 않는다. 환자는 아픈 것만으로 이미 고립된 처지이거늘, 면회는 물론 간단한 안부도, 생활 소식도 들려오지 않는다.

그 뒤로 수십 번의 월요일이 지났다. 이제 한 달 반이면 친구가 입원한 지 어느새 1년이 된다. 재활을 돕고, 생활을 지지하며, 직접 만나 손을 잡고 용기를 북돋우며, 고통 속에서 숱하게 삼켰을 그의 소소한 감정들도 같이 나누고 싶은데 속절없이 시간만 흘러간다. 십 여 년간 함께 했던 월요일의 기억은 추억이 되었다.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은 있나. 케어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필요한 건 없는지, 먹고 싶은 게 있는지 묻고픈 게 한두 가지가 아닌데 벽이 가로놓여 있다. 소통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늘 운전 기능 시험을 보러가던 길에 목련나무 한 그루가 온 팔에 수은등을 달고 있었다. 그 환한 꽃그늘에 서서 격리된 친구를 생각했다. 이번 주엔 벚꽃도 만개할 듯 한데 꽃 한 송이 보여줄 수 없구나. 매주 쓰는 편지가 쌓여가는데 수신 확인은 없고, 선물조차 보내지 못하는 위리안치의 형벌이 길다. 이렇게 사십 여 번 째 월요일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