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라, 여기가 로도스다
도서관에서 外
진광불휘
2023. 2. 5.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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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의 볕이 스미는 일요일 동네도서관에서 잠시 넋을 놓고 앉아있었다. 이용객은 여럿인데 사방이 조용하여 종종 책장 넘기는 소리, 옷깃이 의자에 스치는 배음만 찌르듯이 들린다.
한없이 평화로운 풍경인데, 그럴수록 빠진 하나가 음각처럼 도드라지게 실감된다. 겨울이 가고 있지만 봄은 어디 쯤인지 여직 기미가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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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엔 겨울 호랑이의 등에 올라타 잠시 중부 지방을 돌았더랬다. 뿌리쳐도 뿌리쳐도 계속해서 눈이 쫓아왔다. 찜해둔 미술관과 박물관을 들여다보고 밤에는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아 푹 담갔다. 국밥과 프렌치 토소트, 튀긴닭발과 중국인이 구워주는 만두를 먹으며 피할 수 없는 추위와 마음의 한기를 생각했다. 세상을 덮을 것처럼 쏟아지던 눈은 서울로 돌아오고서야 간신히 그쳤다. 내내 바랐다. 이 긴긴 겨울이 여기서 그치기를. 내 바람은 아슬하고 또 가냘파서 이토록 이루어지지 않는 것일까. 즐겁지 않은데 술에 기대는 날이 게속 늘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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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서 살아가는 인생도, 평범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인생으로부터 귀한 위로를 얻는다. 요새는 무심한 안부가 자주 고맙다. 누구도 알 리가 없을 테지만 그나마 말할 수 있어서 우물에 빠져들지 않는다. 우물,은 오타가 아니다. 우물이 우울보다 훨씬 더 두렵고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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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거나 말거나, 할 일은 차근히. 3월부터는 또 다른 날들이 시작된다.
되도 않는 걱정보다 우선 2월을 무사히 잘 마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