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광불휘 2022. 12. 29.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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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추모한다는 건 무엇일까. 기일마다 그를 떠올리는 것일까. 매일 자책하는 일일까.
모든 장소와 순간에서 그를 만나고 매번 무너지는 것일까. 
 
K형이 은사님의 3주기에 당신의 전집을 내겠다며 같이 하자고 했다. 
이런저런 이름이 두루 엮여 있길래, 굳이 제가 할 필요 없겠네요. 사람이 이렇게 많잖아요
했더니 형이 왈, 진짜 일할 사람은 없어. 대부분 입으로만 걸치고 싶은 거야. 
그래서 은사님의 70년대 장편을 하나 들고 왔다. 세로읽기에다 한자가 가득한.
전부 타자쳐야 할 것들이다. 
 
그리고 은사님의 가장 친한 친구이며 친 아들보다 훨씬 더 가까운 육친같은 존재였던 
내 동기 J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러저러해서 선생님 책을 낸다는데 
네 이름이 들어갔으면 좋겠어. 자질구레한 일이라도 같이 하지 않겠니?
 
J는 고민하지 않고 하겠다고 했다. 1월에 회의 있을 때 나오겠다고.  
 
그가 회의에 나오면, 나는 사랑에 대해서, 또 추모에 대해서 더 깊게 배울 수 있으리라.
그런 날은 술 한 잔 사야지. J에게, 또 은사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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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넘겨서 내가 결심한 것 중 하나는 설레발을 치지 않겠다는 거다. 
호들갑 떨지 않고 최대한 담담하게 환희와 고통을 속속들이 받아안겠단 생각.
그는 내 기대보다는 못 하고 또, 내 악몽보다는 괜찮을 것이다.
그 날이 편안하게 흘러갔으면 좋겠다. 받아들일 수 없는 것도 받아들이고
그래서 내 헛 욕심들까지도 내려놓아서 있는 그대로를 인정할 수 있도록.
 
존재 자체가 이미 선물이다. 내가 할 일은 그가 최대한 편안하도록 돕는 것. 
그리고 그 곁에 오래도록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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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일만이라니. 그러나 이건 또 얼마나 대단하고 또 감사한 일인가.
다 그가 이룬 것. 누구의 도움도 없이. 이렇게나 큰 선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