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광불휘 2022. 8. 19. 22:57

 

친구가 투병한 이래, 내 몸무게가 딱 10% 줄었다. 생각보다 많이 줄었다 싶기도 하고
또 덜 빠졌네도 싶다. 가벼운 수술이라고 입원한 절친이 3개월째 몸을 가누지 못하고
병상에 묶여 있는데, 내가 그동안 밥을 제대로 먹었다면 그 역시 미친놈이 틀림없을 까닭이다.
 
체중 감소의 효과는 대단하다. 그동안 초동안이라거나 십여 살 아래 아니냐 무수히 얘기를 들어왔지만
이제 거울을 보면 딱 내 나이 때 중년의 얼굴이 마주선다. 주름은 깊어졌고, 특히 손목은 엄청나게
얇아져서 전에 쓰던 세월호 팔찌를 사이즈 M에서 S로 바꿨는데도 헐렁할 정도다. 허벅지도 마찬가지로
크게 줄었다. 모르긴 몰라도 모든 살들이 고르게 빠졌을 것이다. 지금 내 몸무게는 55kg.
이 몸무게는 내가 고등학교 때의 체중과 같다. 그러니까 나는 석 달만에 30년을 거슬러 돌아갔다.
 
지난 석 달 간의 고통은 내가 살아온 이래 가장 격심한 것이었는데, 그 결과로 체중이 1/10 줄어든
것은 아니다. 반대로 같은 이유로 30% 늘어날 수도 있다. 정상적이지 않은 흐름이 생겨났을 뿐
그 화살표, 방향성이 어디냐에 따라 내가 더 고통스럽다고나 덜 고통스러운 것은 아니므로.
친구의 고통을 같이 겪을 수 없어(환자의 고통은 개별적이어서 공감할 순 있지만 결코 나눠지진
않는다) 그 반향으로 내게는 체중 감소가 나타났지만 거꾸로 폭식증을 앓을 수도 있기 때문에
이런 수치에서는 오직 비일반성을 계측할 수 있을 뿐이다.
 
친구는 여전히 위중한 상태에 있고, 그래서 안부를 알면 알수록 일희일비하게 된다.
좋은 소식은 드물어서, 매일매일이 무탈히 지내기 쉽지않다. 면회조차 엄중히
환자의 컨디션이 좋을 때만 주 1회 보호자에 한해 허용되는 상황이라 무언가를
전하기도 어렵다. 그저 바깥에서 할 수 있는 간접적 도움에만 머물러 있어 속이 탄다.
 
여기서 다시 10% 가량 체중이 빠지면 나 역시 평범한 일상을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딱히 끼니를 건너뛰는 게 아닌데도 전혀 식욕이 없다. 맘이 편하지 않은 탓이겠지.
식욕뿐 아니라 다른 의욕도 없다. 그러나 아픈 친구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건강한 정신과 몸을 지켜야한다. 그걸 알고 있는데도 몸은 계속해서 빨간 신호를
점멸중이다. 내가 이렇게도 마음이 주인인 사람이었다니 잘 믿기지 않는다.
 
친구를 위해서도, 또 내 생존을 위해서라도 좋은 소식이 절실하다. 매일 기도하고 있으나
아직 응답이랄만한 것은 받지 못했다. 두려워서 술에도 탐낙하지 못한다. 만약
빠져들면 걷잡을 수 없을테니까. 다시 말해 나는 최선을 다해 붕괴에 저항하고 있다.
지금의 내 몸은 최선을 다해 저항한 결과다. 좋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지만.
 
내가 고통스러운 만큼 친구가 덜 고통스럽다면 정말 좋겠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읺는다. 절친은 여전히 지독한 고통 속에 있다. 내가 지금껏 쌓아온 어떤 것도
그의 고통을 직접적으로 덜어주지 못한다. 이 무력감, 절망감이 나를 확실히 갉아먹고 있다.
 
그러나 나는 또한 친구를 위해, 보호자들, 다른 친구들과 함께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고 있다.
그것이 직접적으로 절친의 고통을 줄이지 못할 지라도 간접적으로 결과적으로
그의 삶을 도울 수 있다고 믿는다. 필요한 일과 옳은 일을 하려고 노심초사하고 있다.
쉽지는 않다. 쉽지는 않은데... 해야 하는 일이니까. 할 수 있으니까. 짐은 나눠질수록 가벼워지니까.
 
몸이 잘 견뎌주길 바란다. 끼니도 잘 챙기겠다. 아직 갈 길이 멀다. 반색할 소식은 아직 없지만
그런 일들이 앞으로는 아주 많길 바라면서 계속 가겠다. 지금은 1막이다. 이 뒤에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 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써가는 사람 중 하나는 나다. 공동집필이지만
내 역할이 막중하다는 걸 안다. 온 힘을 다해 해피엔딩쪽으로 이야기를 끌고 갈 것이다.
아니, 사력을 다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