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라, 여기가 로도스다

지옥에서 연옥으로

진광불휘 2022. 5. 29. 00:25

 

지옥에서 살아가는 일이 너무 힘겨워서 구원처럼 보이는 곳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아니, 도망쳤다는 표현이 정직하겠다. 다행히, 그곳에선 이편의 지옥을 잠시 잊었는데
하지만 그쪽도 종류는 다르지만 엄연한 지옥이어서 종종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한 채
술잔을 비웠다. 그래도 저쪽이 덜 불행했던 건 내 앞에 앉아줄 사람이 있었단 거겠지.
이편에서는 온갖 망상을 떠올리며 혼자 술을 마실 수밖에 없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B시는 지옥이라기보다 연옥이랄 수 있겠다. 그러나 어디에도 길은 없어서 지옥으로
돌아오면서 참담해지지는 않았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뿐 어차피 마찬가지니까. 
 
하나의 지옥은 내가 만든 것이다. 나머지 하나의 지옥은 셈이 복잡한데, 지분율이 
꽤 되지만 고유의 창작물은 아니다. 각오는 했으나 행복회로를 돌리고픈 약한 마음은
어쩔 수가 없어서 지난 한 주는 기대 반 절망 반의 혼돈이었다. 허나 이렇게 
한 주를 보내고 나니 행복회로는 더이상 가능하지 않은 것 같다. 
그야말로 최악의 순간을 준비해야 할 때다. 
 
불확실성이 사라지고 나면 이편의 지옥은 일상이 되겠다. 그 일상이 전보다 훨씬 더
불행할 지 약간 더 불행할 지 혹은 그보다는 더 나을지는 상상이 되지 않는다. 
비감과 후회, 애도와 무력감에 아주 오랫동안 시달리게 되리라. 
전에 없었던 일이어서 가늠하기 어렵다. 그러면서 나는 저쪽의 지옥, 혹은 연옥에 기대게 될까. 
아니다. 그럴리가. 그런 타입의 인간은 아니므로 나는 아마도 이편의 지옥을 내재화한채로 
가면성 우울증의 한때를 살아가겠지. 어떤 것도 욕망하지 않게 되리라.   
 
인생에서 지난 주처럼 긴 한 주는 없었다. 그러나 곧 알게 되리라.
그 길고 긴 한 주들이 수없이 남아있다는 것을. 누구를 원망하겠나. 
그 지옥과 연옥들은 결국 나와 깊숙이 관계맺고 있으므로. 
비용을 치를 때가 됐다. 너무 오래 눈감고 미루었던 책임을 
복리이자까지 쳐서 전부 물어야 할 때. 
 
나는 지옥의 설계자이자 운영자이며, 간수이고 또 수인이기도 했구나. 
그냥 지나가는 것은 없구나. 받아들이겠다. 
 
지옥에서 여름을 보내는 건 처음이네. 이걸 지캉스라고 부르자. 
눈을 부릅뜨고 그 나날들을 낱낱이 지켜보자. 끝까지 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