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광불휘
2022. 5. 10. 00:00
영화제에서 일할 때 매년 수많은 감독들을 만나며 그들의 영화가 오직 극장에서 상영되는 것만은
아니란 생각을 했다. 영화를 준비하고 시나리오를 쓰고 투자를 모으고 연기자를 뽑고 카메라로
찍고 편집하는 일련의 행위가 끝나고서도 영화는 계속되는 법이니까. 영화제에 출품하고, 상영을
도모하고, 관객을 부르고, 영화를 내리는 일들도 한 편의 이야기였으며 그 후로 영화를 만들건
그렇지 않건 감독으로서 살아가는 삶 자체가 드라마와 같았으니까.
그리고 영화제 일을 마친 뒤에도, 감독이 아닌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그들 역시 영화를 찍고 있는
거라는 생각을 했다. 회사에 다니든,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든, 일없이 지내든, 결혼을 하든,
혼자 살든, 인기가 있든 없든 그들도 자기 인생을 쓰고 있는 중이라고 나는 믿었다. 그래서 감독들이
제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항상 최적의 환경에서 영화를 찍고 있는 건 아니듯이, 어떠한 순간에도
우리는 최선을 다해 자신의 모험을 헤쳐나가는 거라고. 영화가 수많은 필름들 중에
편집된 장면으로 이루어지듯, 우리 역시 타인에게 보여주는 삶과 그렇지 않는 삶이 있는 거라고.
거꾸로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최악의 순간들을 살아갈 때, 어디까지를
자신의 작품으로 인정해야 할까. 또는, 최고의 순간들을 살아간다 착각하면서 실제로는
그저 연명하기만 할 때, 과연 자신의 의식과 현실 가운데 어떤 것이 자신의 작품일까.
그래서 우리 삶에는 비평이 필요하지 않은가 싶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조건과 삶,
보여주는 것과 숨겨둔 삶. 그것들을 총합하고 또 가려내며 버릴 것과 밀고 나갈 것을 찾는 철학.
주어진 24시간이 덜컥 주어진 선물같은 때가 있는가 하면 지독한 저주처럼 느껴질 때도 역시 있다.
이 긴 영화 속에서 너는 기필코 무엇을 볼 것인가. 보려하는가. 볼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