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까지는 못 되지만
이사온 지 4년만에 뒷산에 정을 붙이고 매일같이 오른다. 야트막한 산이지만 그래서 좋다.
사방팔방으로 빠지는 코스도 많고, 길이 험하지 않아 무리 없이 걷기에 알맞다.
월요일에 처음 혼산객으로 데뷔했는데, 그 뒤로 하루만 빼고 빠짐없이 다닌다.
집에서 10분여 비탈길로 산동네를 지나면 바로 입산로가 나오고, 그 뒤로는 10분만 산길을
오르면 정상이다. 등산, 이라고 하면 모두가 웃을 정도다. 그러나 동네를 크게 한 바퀴 감아도는
둘레길을 따라가면 1만보 정도는 우습게 찍히는 만만찮은 경로다.
혼자 다니기 시작하면서, 첫 날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상념에 시달렸다.
지금의 내 삶이란 그 따위 한심한 걱정들로 가득한 생활인 것이다. 그러나 운동의 좋은 점이란
머리를 비우는 데 있다. 며칠째 계속하면서 의미없는 것들이 떨어져 나가고 점점 더 단순해진다.
운동 효과도 있지만 그 이상 잡생각을 덜어준다.
아직은 날이 그리 춥지 않아서 책을 가져가서 읽기도 하고, 호젓한 산길을 오르는 동안
민망한 포즈로 온몸을 풀기도 한다. 다친 어깨를 돌리고, 허벅지를 번갈아 들어올리며,
호흡도 가라앉힌다. 푸른 공기를 폐 가득 들이마시는 것도 즐겁다. 노인들이 왜 그렇게
등산에 목을 매는지 알 만하다. 사실 이제 나도 젊은이보다는 늙은이에 한참 더 가깝다.
하산이 더 길고, 계단이 많은 지형인 탓에 다음 달부터는 스틱을 준비해야 겠다.
오르는 것은 좋지만, 내려가는 것이 더 힘들고 소모도 크니까. 부모님께 사드렸으나
쓰지 않으시는 예비 지팡이가 있으니 그걸 빌려도 되겠지. 코로나19가 2년 째,
도서관도 스포츠센터도 제한적으로만 개방중이다. 그런 와중에 언제나 갈 수 있는
곳이 생겨 반갑고 기껍다. 평일 오전엔 사람이 많지 않아 신경쓸 일이 적다는 것도 큰 장점.
이제서야 나는 맬러리가 했던 말을 이해한다. 예전에 그와 관련된 책을 읽었을 때
그 말들은 그저 허세일뿐이라고 생각했다. 입문한 지 며칠 되지 않은 생짜 초보인데도
지금은 그 문장이 더없이 진실하고 적확하다고 느껴진다. 왜 산을 오르냐고? 이유야 간단하다.
"Because it’s there(산이 거기 있으니까)." 달리 말하자면 이렇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혼자서도 누릴 수 있는 행복이 거기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