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라, 여기가 로도스다

박성민 시, "데자뷔"

진광불휘 2021. 10. 18. 21:51

 

언젠가 이 골목길 걸었던 것 같은데

전생일까, 당신이 날 바라본 것 같았는데

 

멀리서 곱게 늙으며

기다린 것 같았는데

 

어디에서 기다리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이 저녁 내 기억은 물컹한 두부 한 모

 

얼굴을 세숫대야 속에서

움켜쥔 것 같았는데

 

누구와도 눈빛을 마주치지 않겠다고

그림자 질질 끌며 걸었던 것 같은데

 

허공을 벗어난 벼락이

땅 위에 꽂힌다

  - 박성민 시, <데자뷔> 전문, 『어쩌자고 그대는 먼 곳에 떠 있는가』,시인동네,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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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민 시집엔 읽어낼 꺼리가 많다. 이 시집은 참 좋은 시집이다. 

절창을 여럿 뽑아냈으니. 어린 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해 다시 듣듯이, 그의 시집을 여러 번 되풀이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