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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라, 여기가 로도스다

외양간이라도 고치길

진광불휘 2023. 6. 30.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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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를 초대해 대접하고 나서 이렇게 현타가 온 건 처음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단순한 헤프닝은 아닌 듯 해서 정리하고 다짐할 목적으로 적어본다. 다시 만나지 않을 사람들에게 하는 마지막 조언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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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제 몸을 가눌 수 있을 정도로 술을 마셔라. 중년의 나이에, 술자리마다 매번 취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부축을 받아서야 귀가하는 일이 일반적인 경우라고 생각하니? 이 모임에서 누가 당신 술 먹으라고 강요하디? 안 하잖아. 매번 취하면 알아서 조절해야지. 언제까지 뒤치닥꺼리를 맡길래. 제발 정신 좀 차리고 작작 드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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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먹고 싶은 메뉴가 있으면 당신이 시켜. 스마트폰 있잖아. 제 휴대폰 켜서 멀쩡히 있는 배달앱 작동시켜서 평점순을 보든 거리순을 보든 원하는 식당과 음식 골라서 결제해. 다른 사람들은 그걸 먹고 싶어하지도 않는데 왜 당신이 땡기는 메뉴를 남들이 일일이 찾아가며 결제까지 해야 해? 이게 뭔 갑질이야. 남한테 뭐 시키는 그런 짓거리 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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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약속 좀 지켜. 이건 정말 기본 중의 기본이야. 남들은 내가 늦어도 별 신경 안 쓰고 잘 논다. 이딴 변명이 통용된다고 생각하니? 정말 한심한 일이야. 핑계 대지 말고 그냥 약속을 지키면 돼. 못 지키면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이런 지적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사건이란 걸 모르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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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 중에 혼자 집에 가기 어려운 사람이 있지. 택시앱 열어서 차 불러주면 되잖아. 그게 어렵니? 술 사와, 음식 만들어, 불러모아서 종일 서빙한 사람도 있는데 뒷정리하고 내려갈 때까지 아무 것도 안 하고 내가 오면 딱 인계하고 제 갈 길만 가겠다는 게 어떻게 머리에서 나오는 거니? 택시 앱 켜서 주소 물어보고 차 오면 태우면 되잖아. 내가 술값을 받니, 음식값을 받니, 집에 올 때 뭐 사가지고 오라고 하니? 제발 빈 손으로 오라고 매번 말하잖아. 성에는 안 찰 지 모르지만 술도 언제나 넉넉히 준비하고 안주도 다양하게 줄려고 애쓰잖니. 근데 일행한테 달랑 택시비 3만원 내 주는 게 아깝니? 그날 네가 먹은 술값만 해도 7만원은 넘었겠다. 안주 값 빼고 오직 네 입에 들어간 술값만. 근데 그 돈이 아깝니? 그래서 내가 설거지와 정리 마치고 내려오길 기다렸니? 이게 처음도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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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소'는 아니야. 그러니 나 때문에 이것들을 고칠 필요는 없지. 네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너와 술 마셔 주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이미 많이 늦었지만 외양간이라도 좀 고쳐. 내일 당장 죽을 게 아니잖아. 한참 더 술 마시고 싶잖아. 앞으로 내가 만나서 이런 이야기를 전해줄 일은 없을 거야. 이미 끝난 사이니 신경쓰지 않아도 돼. 이건 그냥 내 오지랖이겠지. 그동안 덕분에 좋은 일도 많았어. 고마웠고. 그치만 여기서 이제 끝내자. 더이상 아무 것도 같이 하고 싶지 않아. 이게 내 작별 인사 겸 마지막 당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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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는 이럴 때 쓰는 인사가 있지. 우리 말에도 있었으면 좋겠어.
아듀.
 
 

<사족> 이 이야기에 C군은 해당안됨. 다른 사람 얘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