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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라, 여기가 로도스다

칭따오 논알콜릭

진광불휘 2022. 7. 10. 02:46

 

무알콜 맥주 중에 가장 맥주에 가깝다는 칭따오 논알콜릭을 주문했다.
술을 마시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날들이다. 열대야는 계속되고, 친구도 없고,
나쁜 일만 가득한 여름이니까.
 
10여 년 전 알러지를 앓을 때, 술을 마실 수 없어 마트에서 무알콜 캔맥주를 사다 마셨다.
지금은 훨씬 다양해 졌지만 그때도 네다섯 종류는 있었다. 그중 독일산 무알콜이
저렴해서 자주 먹었는데, 첫 모금엔 비슷한 느낌이 났지만 두 번째부터는
쓴 맛이 너무 도드라졌다. 반대로 너무 달아서 넘기기 힘든 것도 있었고.
 
칭따오 논알콜릭은, 높은 평점과 다수의 시음후기가 보여주듯
괜찮은 무알콜 맥주로 보인다. 그러나 큰 기대는 금물. 나란 인간이
술에 기대하는 건 적당량의 알코올이므로, 무알콜 맥주가 내 염원을 채워줄 순 없으리라.
하지만 풍부한 거품, 적당한 탄산, 진한 보리향은 마시는 동안 내가
맥주를 마시고 있단 착각을 선물해 주겠지. 그 정도면 된다.
 
진짜를 바랄 수 없을 때, 그 대안으로 진짜 비스무레한 것들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상당한 만족감을 선사한다.
자본주의가 쇼핑으로 열패감과 고독을 상쇄하듯이.
 
행복은 추상명사이고, 따라서 우리가 행복이라 부르는 것은 각기 다르다.
어떤 이의 행복은 확실한 전능감일 수도 있지만, 또 어떤 이의 행복은
그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소소한 평화일 수도 있다.
거기에 우열은 없다.
 
괴로운 시간을 견디는 법을 더 많이 알고 싶다. 나는 여전히 잘 모른다.
보이지 않는 데 숨어 있거나, 코미디 프로를 틀어놓고 술잔을 기울이거나
양자택일 뿐이다. 강도가 높아져서인가 최근엔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땡볕의 한여름이라 산책도 어렵다. 예전같으면 만화라도 보러갔을텐데
그런 의욕마저 꺾였다. 몸무게가 20대 때보다 더 줄어들 테세다.
 
칭따오 논알콜릭이 해결책은 못 되겠으나 한때의 탈출구가 되주었으면 좋겠다.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으련다. 다만 지금의 불확실한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 버리길.
이 괴로운 시절을 후에 그래도 괜찮았다, 고 미화하지 않기를 바란다.
 
지금은 정말 가짜 맥주라도 동원해야 할 시점이다.
여기서 헤어날 수 있다면 다 가져다 쓰자. 무엇이든 어쨌든.